한적한 곳에서 to a solitary place
마태복음 14장 13~14절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Matthew 14:13~14
13 When Jesus heard what had happened, he withdrew by boat privately to a solitary place. Hearing of this, the crowds followed him on foot from the towns. 14 When Jesus landed and saw a large crowd, he had compassion on them and healed their sick.
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세계 가운데 가장 나중에 당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습니다. 해와 달과 별들, 산과 강 그리고 바다, 나무와 각종 동물들, 새들과 물고기들. 모든 지구상의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손으로 땅의 티끌을 모아서 직접 만드셨습니다. 빗으시고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하나님의 손길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닮아서 재창조에 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한 없음에서 세상을 만드신 것을 그대로 모방할 수는 없습니다. 재료를 가지고 무엇을 만드는 능력이 사람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방하여 재창조를 하는 인간은 영적인 면에서도 같은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훌륭한 영성생활을 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루터나 칼뱅 혹은 웨슬리를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삶을 모델로 삼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은 참 하나님으로서 세상에 오신 참 인간이셨습니다. 때문에 인간으로서 겪어야 하는 과정-태어나고, 살고, 죽는 것을 겪으셨습니다. 특히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매우 바쁜 일상을 지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갈릴리 바닷가로 나아가셔서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시고 배 주인인 시몬과 안드레 그리고 그들의 친구이자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 삼으십니다. 그런 다음 베드로의 동네인 가버나움에 들어가셔서 회당에서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시고, 열병에 걸린 베드로의 장모를 방문하여 고쳐주십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와 온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고 예수께서는 그들 가운데서 병든 자를 고쳐주십니다. 다음 날 새벽 다시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시고 제자들을 불러 다른 마을로 가셔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복음서의 기록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잠잘 곳도 없이 먹을 틈도 없이 식사를 거르면서 여기 저기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분주한 가운데서 그 많은 일들을 감당하셨을까요? 예수께서 사신 영성생활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한 가지 실마리를 찾아보았습니다.
분봉왕 헤롯이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받고 헤롯이 예수님을 부활한 세례요한으로 여긴다는 소식을 들으신 예수께서는 자라신 고향 나사렛에서의 사역을 마치시고 그곳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배를 타시고 따로 빈들에 가셨습니다. 그 곳은 사람들이 가지 않는 곳이며, 인적이 드문 곳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a solitary place라고 되어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종종 이러한 인적이 드문 곳을 찾으셨습니다. 한적한 곳으로 가셨고, 심지어 광야에 들어가시기도 하셨습니다. 산에 오르시기도 하셨습니다. 조용한 새벽시간 동산을 찾으시기도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3가지 행동하신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우선은 떠나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언제나 그만두고 떠나는 장면으로 마감합니다. 무엇을 위해 떠나셨는지 늘 조심스럽게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고향사람들을 떠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헤롯 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떠나고 있습니다. 떠났다고 하는 행동은 단절과 함께 다른 것을 찾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고향을 떠나고 새 일을 향하여 나가가는 능동적 의미에서 단절은 조심스럽게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을 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세상과 떨어져 있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을 두고 어떤 목사님은 은둔의 영성, 혹은 산으로 올라가는 영성이라고 불렀습니다. 분명한 것은 은둔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사역의 방향을 얻는 것이지 거기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한적한 곳에서 다시 나오셔서 세상으로 돌아오셔서 사역을 이어가셨습니다. 산에 오르셨다가 내려가자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찾아오거나 제자들이 불러서 모시고 가셨지만 충분하게 하나님의 뜻을 찾아 시간을 내셨습니다. 제자들이 잠을 자도, 사람들이 몰려와서 임금을 삼으려고 했을 때도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 은둔하시고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한 사역을 반성하고,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받고, 최후의 사역을 위해 준비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향하십니다. 하나님께 위로와 격려와 사역의 방향을 찾았다면 머물지 않고 세상을 향해 내려오시는 영성을 가지셨습니다. 한적한 곳에서 새롭게 되는 재창조를 경험하신 예수님은 사람들을 향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 나라를 전하십니다. 이적과 기적을 베푸시는 것과 비유와 말씀을 가르치시는 모든 이유는 하나님 나라를 전하시기 위함이었고 그것은 결국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원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자신은 철저하게 순종을 구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삶을 보여주시면서 원하시는 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것을 배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5장 8절에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한적한 곳에서 따로 떨어져 철저하게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통해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는 나에게 이해관계를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사람들은 이 말씀에 반문을 제기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까 그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을 따라 그렇게 살아갈 수 있냐고 자신의 연약함을 정당화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브리서 5장 7절).
예수께서는 분명하게 육신을 입으셨고 아버지 하나님께 자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위해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아뢰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철저하게 인간의 삶을 사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인간의 고뇌와 고통과 슬픔과 좌절을 겪으셨습니다. 오히려 일반적인 인간이 겪는 것보다 더 심하게 당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채찍에 맞으셨던 분계십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배반을 겪으신 분계십니까? 잘 키운 제자의 배신을 경험해보셨습니까? 그런 만큼 예수께서 본을 보여주신 것처럼 기도하시면서 하나님께 매달린 경험이 있으십니까? 고통이나 고난을 일반화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당하신 것은 일반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이 모든 일을 위해 하나님을 찾으셨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결단 하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을 찾아 스스로 사람들에게서 떠나셔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결국 예수께 필요하셨던 영성생활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증거만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분주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변화의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포스트모던의 삶에서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런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시간을 아끼고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때가 악합니다. 때문에 종종 하나님의 음성을 집중적으로 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골방에 들어가기도 하고, 인적이 드문 곳에서 하나님과 따로 만나야 합니다. 늘 기도합니다. 늘 묵상합니다. 그것도 필요하지만 우리는 때로 세상의 것을 끊고 떠나서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지고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신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은 순종입니다.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비록 실패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실패가 아닌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과정일 수 있습니다. 고난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간구는 고난을 면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순종함으로 고난을 넉넉히 이길 힘을 달라는 것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이들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영성에 이르도록 간구해야겠습니다. 함께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