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
출애굽기 20장 7절
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Exodus 20:7
7 "You shall not misuse the name of the LORD your God, for the LORD will not hold anyone guiltless who misuses his name.
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이름은 언제나 그 대상을 연상시킵니다. 이름은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부르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시인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를 읽어드리겠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이름은 때로 존재 의미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름은 그의 삶을 예표하기도 합니다. 처음 사람인 아담의 이름은 사람 혹은 남자라는 뜻입니다. 하와는 단순히 여자가 아닌 ‘생명을 잉태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모든 산자의 어머니’라고 말합니다. 아브람과 아브라함, 사래와 사라 등 수많은 성경인물들은 그 이름으로 삶을 대변하기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칭하는 이름은 언제나 그 자체로 하나님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신을 알리는 호칭을 통해 자신의 신성 가운데 있는 어떤 속성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알려주신 새로운 이름이나 명칭을 통해 그때마다 하나님의 본성이나 어떻게 역사하셨는지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읽은 십계명의 제3계명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그 성호를 통해 자신의 속성을 계시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도 그 성호를 통해 하나님을 이해했다는 것을 먼저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 이름 속에 내재된 의미와 의도를 무시하고 그 이름에 의해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을 부정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 셋째 계명을 깨뜨리는 범죄 행위가 됩니다. ‘쉬운성경’으로 이사야 48장 1-2절을 보면 “야곱의 자손아, 내 말을 들어라. 이스라엘이라고 불리는 유다 자손아, 귀를 기울여라. 너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기도 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지만, 너희는 정직하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다. 스스로 거룩한 성의 백성이라 부르고, 만군의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는 자들아”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나 성실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부르나 의로움이 없는 이런 태도야말로 아주 명백하게 이 계명을 깨뜨리는 행위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 이름에 담겨 있는 계시의 내용은 따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2-23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여기서도 사람들은 예언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권능을 행하는데 주의 이름을 사용하였음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상 주님은 전혀 알지 못하고 행한 것입니다. 그것은 이 계명이 경고하고 있는 것처럼 오히려 신성 모독의 교묘한 형태이기도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본래 정하신 합당한 방법대로 사용하지 아니할 때, 하나님의 이름이 나타내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계시의 내용에 충실하지 아니할 때 실재로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오용하는 것이 됩니다.
제3계명에서는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히브리 원문에는 ‘죄 없다’란 표현이 아니라 ‘깨끗하다’라는 말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그를 깨끗하다고 판결하지 아니하리라”는 뜻이 됩니다. 이를 다른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그 사람의 태도가 어떤지 알면 그가 깨끗한 삶을 사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의심스러운 문제에 대해서는 진지한 태도를 취하느라고 하나님의 이름은 빼고 얘기하는 어떤 사람이, 항시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도 생활에서는 늘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깨끗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많습니다.
하나님을 나타내는 이름들 중의 하나는 왕(King of Kings)이라는 칭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권에 복종할 때에야 만이 왕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또 다른 명칭은 아버지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것처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할 때에야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칭호를 부를 때는 그 이름에 합당한 행위가 뒷받침 되어야만 하나님 이름을 망령되지 않게 일컫는 것이 됩니다.
이러하듯이 오늘날 사람들은 세 가지 방법, 즉 신성을 더럽히는 언행과 경솔함 그리고 위선으로서 셋째 계명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첫째, 오늘날에는 불경스럽게 맹세하는 죄가 만연해 있습니다. 이것은 그 무엇보다도 가장 조심해야 할 습관으로서 흔히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짓는 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느 때 맹세할 수 있는지를 바로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아주 부패한 환경에서 태어났기에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말을 자주 해왔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환경에서 태어났어도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문화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더 그럴 수 있습니다. 너무나 쉽게 하나님을 모독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듣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외국인도 배우지 않고서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욕이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간 욕이 많이 사용된다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성을 모독하는 욕을 하는 습관에 빠진 사람마다 거의 자신도 모르게 그 욕설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데, 그들은 오늘날 우리 귀에 천등 소리처럼 울리는,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두 번째,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또 다른 형태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경박스럽게 사용하는 일로서 다름 아닌 하나님에 관해 농담을 하는 행위입니다. 사람들을 웃기기 위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 농담들이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립니다. 사람들이 거룩한 것을 거룩히 여기지 않고 경솔하게 생각할 때는 언제나 그 마음과 의식에 악한 영향을 되돌려 받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존경심과 경외 의식을 스스로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과 그의 거룩한 이름에 대한 존경심을 잃어버린 사람은 철저하게 부정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떨지 않는 사람은 마땅히 해야 할 바대로 예배하지도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로움을 행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제3계명을 깨뜨리는 여러 유형 가운데 아주 교묘한 마지막 형태는 “주여, 주여”하면서 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 저지르게 됩니다. 행함이 없는 기도는 불경한 짓입니다. 존경하는 마음이 없이 드리는 찬양은 셋째 계명을 위반하는 행위입니다. 사욕을 품은 채 헌금 하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대한 모독입니다. 이런 생각들을 다르게 말해 봅시다. 교회 내에서 행해지는 신성 모독은 세상에서 행해지는 신성 모독보다 한없이 더 악합니다. 그러면 교회에서 신성 모독은 어떻게 나타날 수 있을까요?
실천이 따르지 않는 외식적인 기도, 하나님을 찬양하기는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그에 대한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의미가 상실되는 찬양, 이러한 기도는 신성 모독이며 이러한 찬양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범죄 행위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는 웅변적 말솜씨와 미사여구를 사용하고 경건한 태도로, 심지어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설교하고 기도하며 찬송하고서 집으로 돌아가 만약 이 계명들 중 하나라도 깨뜨린다면 그 사람은 기도할 때 하나님을 모독하였던 것입니다. 설사 그가 세상은 속일지라도 전지하신 하나님은 속이지 못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다면,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진실함이 없다면 차라리 그는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이 셋째 계명을 가장 철저하게, 그리고 아주 두렵고 끔찍하게 깨뜨리는 형태는, 바로 자기가 한 신앙 고백대로 전혀 생활하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계속해서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는 태도입니다. 이것을 위선이라고 표현합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경멸했던 이유가 바로 이 위선적인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신앙 고백을 하면서도 생활로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위선적인 사람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방해하는 자입니다. 누구든지 범할 수 있는, 아주 교묘하고 두려운 형태로 셋째 계명을 깨뜨리는 행위는 바로 위선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가장 간단한 음절이면서도 하나님의 마음과 능력과 사랑을 가장 많이 압축시켜 넣은 최상의 이름은 무엇인가?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바로 그 이름은 원래 하나님이셨으나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자의 이름 “예수”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그 이름에 관해 노래하면서도 자기 죄에서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 자가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렇다면 그도 예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자이며 이 셋째 계명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구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칭찬하고 그의 가르침에 관해 이야기하고, 언행에 대해 따라갈 것을 장려하지만 자신을 구원할 구주됨을 믿지 못합니다. 그는 죄에서 구원받지 못하고 제3계명을 어긴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스스로를 되돌아보아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나는 신앙생활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의 성호를 드러내고 있는가? 주의 이름을 찬양하면서 그 이름을 높이는 삶을 살고 주님께 깨끗하다 인정받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존귀하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