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라
출애굽기 20장 2-3절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Exodus 20:2-3
2 "I am the LORD your God, who brought you out of Egypt, out of the land of slavery. 3 "You shall have no other gods before me.
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이집트에서 사백여년 동안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탈출을 하게 되고 신(Sin)광야에서 르비딤을 떠나 시내광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출19:1-2). 그곳에서 하나님의 명령으로 산에 오르게 된 모세는 40주야를 지내며 하나님께 백성들에게 가르쳐줄 율법과 십계명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십계명을 주신 것은 어떤 상황을 전제하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주어진 규칙이나 법률이 아닙니다.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피조세계에서 가져야할 도리 즉,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입니다. 때문에 십계명은 환경이 변하고 상황이 달라져도 바뀌지 않는 원리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자녀로서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러한 십계명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데 훌륭한 지표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시내산에서 모세가 받은 십계명은 일반적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전반부 1-4계명은 절대자 하나님에 대해 인간이 지켜야 할 규례를 담고 있고, 후반부 5-10계명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상호간에 지켜야 할 규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은 한 시대를 위한 법이 아니라 영구불변적인 가치를 지닙니다. 그러면 오늘 읽은 본문에서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고대근동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러 신들을 섬겼습니다. 그러한 다신론적인 당시 시대 상황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 여호와만이 참신임을 첫 번째로 천명함으로써 바른 신앙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은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먼저 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후에 나오는 계명들의 근거가 됩니다. 이 첫 선언은 신앙의 대상으로 삼을 이의 이름을 두 가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여호와’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자신을 일컬어 여호와(JEHOVAH)라고 하셨습니다. 이 여호와(Jehovah) 라는 말은 세 개의 히브리어 단어가 합성되어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➀Yehi(그는 존재할 것이다), ➁Hove(존재하도 있다), ➂Hahyah(그는 존재했다). 이 세 단어에서, 첫 단어의 첫 음절인 YEH-(i)와 두 번째 단어의 두 번째 음절인(h)-OV-(e), 세 번째 단어의 마지막 음절인 (hy)-(ha)-AH가 합성 되어 여호와(YEHOVAH)라는 단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의미를 정리하면; 장차 계실 분이며 지금 계시는 분이고 이미 계셨던 분입니다. 여호와란 이름에서 암시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은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한한 인간의 지성으로는 영구히 풀 수 없는 커다란 신비입니다. 사람이 마음속으로 미래세대로 끝없이 뻗어나간다 할지라도 거기서 하나님은 “나는 장차 있을 자”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또 사람들이 생명과 질서와 신비와 계시의 모든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는 현재 순간을 생각한다 할지라도, 바로 이곳에서 하나님은 “나는 지금 있는 자” 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또한 사람이 마음속으로 가능한 한 무한히 먼 과거를 생각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나는 전에도 있었던 자”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자신의 기원(起源)에 대해서나, 현재 상태, 혹은 자신의 미래의 운명 그 어느 것에 대해서 생각하든지, 하나님은 바로 그곳에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나는 여호와JEHOVAH” 라는 말씀으로 나타나는 하나님 앞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더 나아가 “나는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God)이란 말은 히브리어 ‘엘로힘’(Elohim)으로, 예배의 최고 대상을 뜻하는 ‘엘로아’(Eloah)의 복수형입니다. 이는 ‘강하다’, ‘능력 있다’란 뜻을 지닌 말로써 하나님께서는 강한 권능과 위엄을 지니신 세상의 주관자란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앞으로도 있고 지금도 있으며 전에도 있던 예배의 최고 대상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전제 없이 첫 번째 혹은 십계명 전체를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선포된 첫째 계명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만일 하나님이, 친히 주장하시듯이 앞으로도 있을 것이고 지금도 있으며 전에도 있었던 존재라면 그는 예배의 최고 대상이심에 틀림없습니다. 만일 그가 여호와 곧 사람의 하나님이심이 분명하다면 하나님만 섬기라는 이 계명은 합당합니다. 따라서 그 외에 다른 어떤 신을 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며 따라서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 여호와 이외에 그러한 묘사에 적합한 다른 존재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신을 필요로 합니다. 마음이든지 생활이든지 혹은 자신이 가장 중히 여기는 곳이든지 그 어딘가에 자기가 예배하는 신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공기가 없으면 새가 날아다닐 수 없듯이 사람은 예배하는 대상을 두지 않고서는 살 수 없습니다. 인간 생명의 기질 자체와 인간 존재의 신비가 예배의 중심인물을 필연적으로 요구합니다. 때문에 우리의 삶 자체가 예배라고 말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전제가 성립할 때, 존재로서의 모든 행위와 살아있음의 활동, 신적 대상에 대한 자신의 능력의 헌신적인 사용, 이런 것들이다 예배 행위이게 됩니다. 문제는 사람의 생명과 능력이 참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바쳐지느냐 아니면 거짓 신에게 바쳐지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그 마음에서 몰아내면 스스로 신이 되어 자신을 예배하게 되거나, 또 다른 거짓 신을 섬기게 됩니다. 오늘날은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하여 자신을 예배하고 오직 자신만을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간이 참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 잘못된 예배 대상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기어 “나는 주 너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씀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게 되는 순간 곧바로 그 자리에 다른 어떤 것을 대치시킵니다.
성경에 언급된 이방인의 신들 중에 몰록이나 바알, 그리고 맘몬과 같은 신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몰록을 예배함으로써 사람들은 몹시 잔인해졌고, 바알을 예배하려면 사람들은 짐승 같은 아주 추잡한 성적 행위들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맘몬의 추종자들은 재물에 숨어 있는 막강한 힘을 맹렬하게 추구하며, 그것에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몰록이나 바알, 맘몬은 거짓 신들입니다. 그런데 이 거짓 신들은 사람들이 오늘날까지 예배하고 있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비록 이 신들이 오늘날과 같이 문명이 발달하고 스스로 깨우쳤다고 생각하는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알려져 있을지라도 세상은 그 신들을 예배하는 우상 숭배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실례를 보기 위해 구태여 우상 숭배가 성행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프리카나 중국 혹은 인도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 너무 많은 이들이 우상숭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대도시에는 자신들의 ‘잔인한 욕망’이라는 몰록에게 ‘인간’이라는 제물을 바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비열한 욕망이 만족을 얻는 한, 싸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든지 상관 하지 않습니다. 폭력적인 게임과 상대를 짓밟고서라도 성공해야 하는 사회적 압박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삽니다.
또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바알 곧 짐승 같은 행위를 숭배합니다. 각종 미디어에 넘쳐나는 상업적인 광고 혹은 관심을 끌기 위한 모든 일에 성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끔찍하고 가증한 이 정욕적인 모든 행위가 실상은 우상 숭배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맘몬 숭배도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또 다른 악한 형태의 거짓 신앙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재물에 대한 강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 시대는 재물의 신에 대한 열렬한 숭배로 말미암아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피조물로 하여금 자기 앞에 어떤 다른 신도 두지 못하게 하겠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을 위하여 지어졌습니다(사43:21). 하나님은 바로 모든 피조물의 존재 목적이 되시고 또한 각 사람의 중심이 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은 인간의 본성 자체로 볼 때도 합리적인 것이다.
신약성경은 이 계명을 환히 밝혀 줍니다. 신약은 이 계명들을 전혀 폐지하지 않고 오히려 강조하고 반복하며 새로운 뜻을 부여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율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그 율법을 지킬 수 있을 때입니다. 그것은 마치 나라의 법률을 지키며 사는 도덕적인 사람이 체포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지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파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이 율법을 성취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율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을 닦아 놓으셨습니다.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예배하라는 자신의 주장을 포기 하시고, 사람들이 다른 신을 섬겨도 좋다고 말씀하십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점을 밝히는 신약의 빛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 4:10)고 우상숭배를 강요하는 사탄에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5분만 시간을 내어 다른 모든 사실은 다 잊어버리고 지금 홀로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5분도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를 끔찍하게 싫어합니다.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시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질문합니다. 이 질문은 항상 염두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모신 나의 하나님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입니다. 이 질문에 만일 하나님을 뒷전으로 몰아내는 어떤 대답을 하게 된다면, 천국을 위해서, 그리고 영원한 삶을 위해서 “모든 우상을 부숴 버리고 모든 적을 쫓아내며” 앞으로도 계시고 지금도 계시며 전에도 계신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모셔야 합니다.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삶을 새롭게 하시길 축복합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라!”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