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
요한복음 7장 37~39절
37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우리는 사도신경 혹은 니케아신경의 신앙고백을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여깁니다. 거기에는 분명하고 명확하게 “우리는 성령을 믿습니다.”라고 명시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분이라고 믿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손과 발보다 가까이 계시고 우리의 호흡보다 더 가까이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지난 오랜 동안 우리는 성령에 대한 이해를 잘 못하고 있거나 무엇을 말해야 좋을지 알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성령의 능력과 임재를 강조할 때 신약의 교회가 가르치고 있는 바를 충실히 따랐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성령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성령에 대한 기본적 자료는 성령에 대한 예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과 오순절에 일어난 사건 그리고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만 성령에 대한 성경적인 지식이 우리를 성령 충만한 삶으로 이끌어주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사모할 마음을 가지게 할 동기,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에 충만한 삶은 그 음성에 순종할 때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나타난 성령
우리는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시던 때를 기억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직면하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지상에서의 사명이 곧 끝나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사랑하는 제자들의 마음을 한데 모아서 그들을 강하게 해주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요한복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요14:13-17). 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5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요한14:26) 그들은 이 세상에 홀로 남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성령의 임재는 그들을 도와주며 힘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라.”(요16:7) 여기서, 보혜사라는 말은 물론 성령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는 παρακλητος 라는 희랍어로 번역하기 어렵지만 곁에서 돕는 이라는 뜻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예수님은 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요한16:13)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을 계속하셨습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요한16:14,14:29) 예수님은 성령의 활동을 예수님 자신의 인격과 사명에서 분리할 수 없도록 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성령은 반드시 올 것이며, 성령이 오시면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예수님 자신에, 그리고 예수의 이름을 지닌 공동체(교회)에 집중케 하실 것이라고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 약속은 오순절 날에 실현되었습니다. 열한 제자와 그 밖의 사람들이 다락방에 모여 마음을 같이 하여 전적으로 기도에 힘쓰고 있었습니다(행1:14). 예수께서는 그들이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그 성에 유하라고 명하셨습니다(눅24:49). 그들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을 것이라” 하신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얼마 못되어 성령이 강림하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사도행전2:4)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몇 주일 전에 작은 계집종 앞에서 떨면서 주를 부인했던 베드로는 이제 변화를 받고 능력을 얻어 예루살렘 사람들 앞에 서서 힘찬 설교를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바로 예수님을 거절하고 또 그를 따르는 이들을 잡아 옥에 가두려고 했던 성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첫 번 오순절에 일어났던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하늘로부터 온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를 중시합니다. 다른 이들은 각 사람 위에 임해 있던 “불의 혀같이 갈라진 것”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던 것을 기억합니다.(사도행전2:2-4). 그러나 분명히 이것들은 외적이고 부수적인 요소이었지 핵심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무엇이든 간에 내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이라는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기 원하는 것은 이 예수의 제자들이 내적으로 어떻게 변화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적인 변화를 일으킨 성령의 임재
우리는 베드로가 성전 경내에서 수많은 무리 앞에 서서 행한 설교 가운데서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사도행전2:36)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의 의미는 사도행전 2장의 첫 네 구절에만 나타나 있는 것이 아니고 베드로와 그 밖의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속에서 그 참의미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이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밝게 해서 비로소 그들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큰 사업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시기로 결정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와 함께 거닐었고 예수의 발아래 앉았었고 예수와 함께 떡을 먹었던 것, 예수의 부활을 보았고 성령을 약속하시는 것을 들었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의 완전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구주이시라는 것과 온 세상은 그분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엄청난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그들 마음에 느꼈습니다. 이것은 그들을 압도하는 경험이었습니다. 절대 잊지 못할 경험. (나를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 이시구나를 깨닫는 경험이기도 합니다.)
성령강림-교회의 탄생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돋보이게 하는 성령의 특별한 사명은 그들 마음속에 새겨진 경험적 사실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이 위대하고 기쁜 소식 위에 기초를 둔 믿음의 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삼천 명의 영혼이 제자의 수에 더해지게 되었습니다(사도행전2:41). 실제로 일어난 일은 성령이 그들의 마음을 비추어서 예수가 정말 누구인지를 알게 하시고, 또 공동체 안에서 살아계신 그리스도에게 전적으로 헌신케 함으로써 그들의 생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로서 교회의 탄생일이 되었던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
이것은 감리교인인 우리에게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경험으로 안다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외적인 표적이나 부수적인 요소도 있을 수 있으나 오순절의 변치 않은 영은 삶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믿음의 능력이었고, 성령으로 이룩된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한 전적인 충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거기 참석했던 사람들도 그들의 본분은 다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장소에 있었고, 또 그들은 성령의 임재에 대해 마음을 열고 응답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힘 그것 없이는 낭패한 사람들이 모여 그들의 두려움과 실망을 나누는 장면에 불과하였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령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라는 사려 깊고 영감적인 바울의 말은 그가 첫 오순절의 내적 의미를 파악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라”는 말은 가장 일찍이 이루어진 그리스도교회의 신앙고백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가 고린도의 성도들에게 가르친 것 즉, 성령의 근본적 사명은 이 신앙고백의 참뜻을 인간에게 깨닫게 하는데 있다는 것은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순절에서 기독교 역사의 근본적 사실에 직면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제자들과 바울은 그 자신의 힘만으로 할 수 없었던 것을 성령의 능력 아래에서 할 수 있었습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에 대하여 많이 물었던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바울이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사도행전19:2)라고 물은 것도 조금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도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새로운 차원의 존재로 들어갔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존재의 새로운 차원이 여러분과 제게 늘 열려지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
성령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활동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이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성령이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충격을 주는 어떤 막연한 힘(에너지 혹은 기라고 하는 것이 아닌 것)을 능가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주는 영이시라는 바울의 고백은 성령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귀한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바울은 성령을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살아계신 그리스도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적 삶을 구현하게 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크신 능력입니다.
성령의 하시는 일을 배우고 분별하여야 합니다.
이런 점을 성경에서 배우는 이유는 우리가 내적인 영적 생활을 강조할 때 성령의 활동을 우리의 심연에서 나오는 느낌이나 육감과 동일시하는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역사하시는 것도 물론 사실이지만, 우리는 성령의 하시는 일에 대해 분명한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믿음의 공동체와 세상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높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밖에 모든 다른 것은 부차적인 성령의 나타나심입니다. 이것을 잊지 마십시오. 성령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계시며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는 이들에게 능력을 더해주십니다. 그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고 살아가게 하는 능력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성령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일 성령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우리의 삶을 사로잡고 있다면 그것은 우상입니다. 오직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게 되면 우리는 예수의 증인이 됩니다. 그것이 성령으로 힘입은 능력입니다. 이러한 성령이 우리 가운데 늘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