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얼굴을 비추시고 구원하소서
시편 31:9~16 [NKRSV]
9 여호와여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10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11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12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 13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14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15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6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Psalms 31:9-16 [NIV]
9 Be merciful to me, O LORD, for I am in distress; my eyes grow weak with sorrow, my soul and my body with grief. 10 My life is consumed by anguish and my years by groaning; my strength fails because of my affliction, and my bones grow weak. 11 Because of all my enemies, I am the utter contempt of my neighbors; I am a dread to my friends--those who see me on the street flee from me. 12 I am forgotten by them as though I were dead; I have become like broken pottery. 13 For I hear the slander of many; there is terror on every side; they conspire against me and plot to take my life. 14 But I trust in you, O LORD; I say, "You are my God." 15 My times are in your hands; deliver me from my enemies and from those who pursue me. 16 Let your face shine on your servant; save me in your unfailing love.
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가 잘 아는 이 말씀은 누가 했을까요?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 기록된 말씀입니다(살전 5:16-18). 만약에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기뻐하세요.’라고 말한다면 기뻐할 생각이 나겠습니까?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기도하세요.’라고 하면 기도할 맛이 나겠습니까?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감사하라’고 하면 감사할 마음이 생길 수 있을까요? 바울 사도는 어쩌면 이러한 말에 가장 적합한 인물입니다.
신약성경에서 그의 삶을 돌이켜보면 현실적으로 고난과 어려움 그리고 약한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외모는 사람들이 비웃을 만큼 별 볼일 없었고 그를 대면하여 본 사람은 그가 말을 잘 못한다고 여겼습니다(고후10:9-11) 물론 그도 스스로 자신이 말을 잘 못한다고 인정하기도 했습니다(고후11:6). 물론 그가 여러 가지 일로 고난을 당한 것은 우리가 잘 아는 바입니다. 어쩌면 그는 기뻐하고 싶어도 기뻐 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하기 힘들고, 감사하고 싶어도 감사하기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이 바울이었습니다. 저 같으면 좋은 일 있을 때 기뻐하시고, 쉬면서 기도하고, 좋은 일 있을 때 감사하라고 하겠지만, 바울은 기뻐하기를 항상 하고, 기도하기를 쉬지 말고 하며, 감사하기를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그는 그렇게 살았는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말과 행동이 어땠는지 알아보고 그리고 그의 말을 귀 담아 들어야 할지 말지 결단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다윗의 시입니다. 시 31편의 상황은 다윗이 오랫동안 어려움에 처한 것을 배경으로 합니다. 특히 오랜 고난으로부터 그는 영과 혼과 육이 다 쇠하여 졌다고 말하고 일생이 슬픔이었고 몸의 근간이 뼈가 약해졌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주변 사람들은 그를 이해해주고, 격려해주고, 감싸 안아주는 것이 아니라, 비방하고 박해하고 있습니다. 그가 믿었던 친구들도 그의 곁을 떠나고, 혼자 남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는 그에게 죽음만이 친구가 되어줄 것 같았습니다. 다윗이 경험하는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감사할 조건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이라면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친구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두 번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자신을 보게 되었기에 여러분에게도 소개합니다. 다른 목사님과 식사를 하려고 식당에 들어가서 주문을 하고 보니 지갑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황해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카드회사에 신고를 하고 경찰을 불러야 하나? 어떻게 지갑을 되찾을 수 있을까? 여기에 모든 신경이 쓰이고 하나님께 기도할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 함께 한 다른 목사님의 조언으로 여기 저기 지나다녔던 동선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다시 따라서 다녀 봐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제야 하나님 아버지, 이 일을 어떠하면 좋아요? 하고 단순하게 기도하게 되었답니다. 물론 그 이후 지갑을 찾았고 그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자신이 성도에게 늘 기도하라고 설교하고 말하면서 순간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하는 순간에 대해 반성한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약속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오늘 시편에서 다윗도 하나님을 찾으며 자신의 처지와 환경과 어려움과 고독에서 건져주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절망적인 순간에 하나님을 찾으며 나는 주를 믿습니다. 나는 주를 의지합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건져주소서! 아멘. 주의 얼굴을 내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해주십시오. 시편에서는 어디서나 하나님께 신실한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리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를 믿는 다윗은 자신에게 하나님의 구원과 약속이 있음을 믿었고 그 약속이 이루어짐을 알았기에 감사하고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말로 “내가 믿습니다.” 라고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고백 이후에 믿음대로 될 것을 확신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모습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내게 임한 고난의 현장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9-13절에서 보이는 다윗의 상황은 인간적인 생각과 기술과 지식으로는 도저히 치유 불가능한 질병을 말하고 있으며, 믿었던 이들의 배신과 조롱, 자신을 노리고 있는 사람들의 계획에 대해 깊은 상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자신은 도저히 치유 받을 수 없고, 구원받을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에 하나님께 깊이 매달리고 간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멀리 떨쳐버리는 불신앙이 아니라 고난이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통로로 쓰인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내가 처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도 있고 반대로 하나님께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입니까? 굴하지 않는 신뢰 속에서 빛나는 보석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이 현실에 굴복하고 좌절하고 지배당하는 모습입니까?
바울 사도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신뢰는 죽음의 현장에서도 빛나는 보석처럼 살아 굳건한 믿음을 보였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그는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기뻐했고,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계속 기도했으며, 감사할 수 없는 조건에서 늘 감사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과 삶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당부하였습니다. 바울의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언하였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체험적인 당부의 말이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말씀을 이루려고 힘쓰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주여 주님의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소서. “주를 바라는 너희들아 힘을 내어라. 용기를 내어라.” 31편 마지막 구절이 우리를 가슴 뛰게 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종려주일에 본문을 생각하면서 예수께서 어떤 마음으로 입성하셨는지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을 제외하고서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가슴 아프게 어렵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숨고 싶고 하지 않고 넘어 갈 수 있다면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기도하실 정도로 피하고 싶은 일이었습니다. 신성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래의 고통과 괴로움, 제자의 배신과 고난과 죽음에 대하여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을 때가 예루살렘 입성 때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위한 나귀를 준비하실 때 “주가 쓰시겠다고 하여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도 그렇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쓰일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렇게 성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 절정으로 치닫는 때에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대한 하나님을 뜻을 이루시기 위해 담담히 전진하셨습니다.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시는 예수님은 천천히 그리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전진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향하여. 복음을 위해 힘을 내십시오. 용기를 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