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암에 앉은 백성들의 빛(Ver. 2)
마태복음 4장 12~17절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개역개정]
Matthew 4:12~17 12 When Jesus heard that John had been put in prison, he returned to Galilee. 13 Leaving Nazareth, he went and lived in Capernaum, which was by the lake in the area of Zebulun and Naphtali-- 14 to fulfill what was said through the prophet Isaiah: 15 "Land of Zebulun and land of Naphtali, the way to the sea, along the Jordan, Galilee of the Gentiles-- 16 the people living in darkness have seen a great light; on those living in the land of the shadow of death a light has dawned." 17 From that time on Jesus began to preach, "Repent,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near."[NIV]
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예수께서 사역하셨던 갈릴리 지역을 눈에 담아 보면서, 이 지역이 은총의 자리였다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다니시던 마을과 길들 그리고 만났던 사람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살아서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더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현실은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게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한 주간을 지내며 점점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다는 생각에 아쉽기만 합니다. 그런 중에 오늘 본문 말씀이 다가와 얼마나 감사한지 다시금 눈을 감아보며 그 자리들을 생각해봅니다. 갈릴리 호수 주변의 마을들과 교회들, 옛 마을의 유적지들 ······.
유대지역에서 잠시 머무셨던 예수님은 사역의 출발지로 갈릴리를 택하셨습니다. 다른 이유를 찾기 보다는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려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9장 1~2절 말씀은 사역지를 갈릴리 주변으로 한 근거가 됩니다. 제가 다녀온 곳은 스불론 지파와 납달리 반 지파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었습니다. 헬몬 산에서 흘러나온 요단강을 중심으로 갈릴리 호수 주변에는 여러 항구마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많이 봐왔던 곳들입니다. 가버나훔, 벳세다. 고라신, 막달라, 디베랴, 게네사렛, 거라사 그리고 데가볼리로 알려진 열 개의 고대 도시들 등 모두가 호수 주변의 항구마을들입니다. 물론 갈릴리는 호수주변만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나사렛, 가나, 나인 등 호수에서 멀리 떨어진 산지도 포함합니다. 예수께서 여기를 사역지로 삼으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마도 그곳은 다른 유대지역과는 다른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구약성경의 역사를 통해본 이 지역은 이방 민족의 침입이 잦은 곳이었습니다. 왜냐면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에서 강한 민족이나 국가가 형성되면 확장의 고리로서 이 지역을 침탈하였기 때문입니다. 바빌론, 앗시리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제국에 이르고 후에는 아랍인들의 공격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방의 문화가 혼재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면서 세속화 이방인 문화화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지역은 점점 영적인 암흑에 쌓여갔고 민족적으로도 배척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근처의 단지파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스불론과 납달리 반 지파는 동족으로부터 비난과 놀림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외세에 많은 저항의 중심지였기에 제국에서도 이곳은 주요 관심의 대상이었고 박해가 심했습니다. 오랜 비난과 박해는 이곳 사람들을 사망의 그늘에 앉은 것처럼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자원이 풍부한 곳이기도 합니다. 갈릴리 호수의 수산자원, 들판에서 나는 각종 과일과 농산물들 지리적으로 요충지였기에 상업과 무역의 요충지가 되었습니다. 심리적으로는 멸시받는 사람들이었지만 세상적인 풍요로움에 마음을 달래보기도 했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바닥 깊은 곳에서는 ‘이방의 갈릴리’로 불려야 하는 외로움이 있었습니다. 그 내면의 어두움은 그곳을 점점 고립되고 함몰되어 가도록 하였습니다. 그러한 때에 갈릴리에 예수께서 등장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등장은 세례요한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지역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후에 한 소식을 들으셨습니다. 그것은 친척이었던 세례 요한의 수감 소식이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마태복음 14장에 나오지만 이 소식은 예수께서 유대지역에서 더 머물 수 없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헤롯은 요한과 더불어 예수님을 붙잡으려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호기심이 많고 위험한 인물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예수께서는 유대지역에서 갈릴리로 물러가셔야 했습니다. ‘물러갔다’는 말의 헬라어 (ἀναχωρέω의 삼인칭단수 직설법 제1부정과거 능동태로 변환된) ανεχωρησεν는 종종 위험에 직면했을 때의 두려움을 의미하는데 이 경우에서는 어떤 위기의식에 따른 장소적 이동과 한적한 곳에서의 은거(隱居)를 동시에 의미한다고 합니다. 때문에 예수께서는 헤롯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멀리 떨어져 있으셔야 했고 더욱이 갈릴리에서 어두움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생명의 빛을 전하셔야 했습니다.
오늘, 뉴욕에서 사는 우리들은 풍요로운 도시의 삶에서 그림자처럼 숨겨진 어둠이 있는 것을 봅니다. 이방인으로서 미국이라는 낯선 곳에서 우리에게 드려진 그늘은 더욱 소망을 기대합니다. 이러한 곳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갈릴리로 물러가셔서 가버나움에 정착하시게 된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이곳으로 떠나보내져서 예수의 삶을 나누어 살게 보내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주 예수께서는 주를 따르는 우리들에게 너희가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세상의 빛이다.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그러기에 깊이 가슴 깊이 드리워진 그늘의 삶에서 새 생명의 빛의 삶으로 떠오르게 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단지 빛으로서의 삶을 살면 됩니다. 그러면 어떤 삶이 흑암에 앉은 백성들이 사는 세상의 빛 된 우리의 삶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