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과 세리
누가복음 18장 9~14절
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한국에 있는 친구와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물질에 대한 만족을 바라고 신앙을 져버린 친구를 위해 기도하는 중이라고 하면서, 지금 그 친구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림을 통해 그 친구가 주님께 돌아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하면서 하고 있답니다. 그리고는 제게 기도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이름 모를 친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 ㅠㅠ 제가 감동받은 것은 그 친구를 위해 2년째 기도하고 있고 계속 구원을 위해 기도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기도를 반드시 들으시고 응답하시리라 믿습니다. 아멘. 믿음으로 구하는 기도,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힘쓰는 기도에는 반드시 응답-보상이 있습니다. 주님께 칭찬 듣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스스로 의롭다고 확신하고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사람들을 향해 한 비유를 나누셨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말씀의 대상은 첫째 스스로 의인인 채 하는 사람, 혹은 자신이 의인인줄 알고 있는 사람이고 둘째는 남을 무시하는 ‘나 중심의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나 잘난 사람’입니다. 첫 구절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해봅니다. 언제나 중요한 질문이지요. 말씀 앞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질문하는 것은 자신의 현재 모습을 보게 하고 겸손의 길로 가게 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겸비(謙卑)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유는 스스로 보기에 어떠한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말씀 앞에서 나는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도와줍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내가 하나님 앞에서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하나님은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인이라고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인이라고 불러주시고 용서하실 뿐 아니라 용기를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지혜 없음을 고백하고 구하면 꾸짖지 않으시고 지혜를 주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아멘. 내가 누구인지 알고 갑시다.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나는 바리새인입니다. 그는 의로운 사람입니다. 모든 삶에 있어서 완전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으로서 바리새인의 모범을 우리는 본받아야 합니다. 그는 도둑질이나 악을 행하거나 간음을 하거나 죄인 취급받는 세리 같지도 않습니다. 그의 행동은 바르고 높은 도덕적인 기준에 맞춰 삶을 살아갑니다. 정기적인 예배에 빠짐이 없고 전통적인 금식도 참여합니다. 물론 소득의 십일조도 확실하게 드립니다. 율법이 정한 규례를 어기지 않고 살아가는 바리새인들의 의는 예수님께서도 인정하신바 있습니다. “너희 의가 바리새인과 같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는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빈손 들고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오는 사람은 감사를 표시해야 합니다. 그의 신앙생활은 충분히 본받을 만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이 사람과 같이 열심을 보이는 신앙인 입니까? 본을 보이는 신앙입니까?
만일 여러분이 그 바리새인 같이 신앙의 본이 되지 못한다면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더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기도시간 예배시간에 빠지지 말고 참석해야 합니다. 소득의 십일조를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교회의 행사에 적극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작정기도하면서 신앙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실천하고 본을 보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은 토해 내쳐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 바리새인은 자신이 이러한 삶을 살기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 ··· ㅠㅠ 우리처럼 율법이 없고 도덕적인 삶을 살지 않고 불의한 사람을 인간취급도 하지 않으면서 내려다봅니다. 깔본다고 하지요. 무시하고 업신여긴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세리입니다. 세리는 당시 민족의 반역자요 기회주의자요 동족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흡혈귀 같은 상종(相從) 못할 사람이었습니다. 앞에서는 어쩌지 못하지만 뒤에서는 욕을 됫박으로 얻어먹는 죄인중의 괴수(魁首)입니다. 타인의 재산을 탐내고 빼앗는 일을 합니다.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기도 하고 율법이 정한 십일조도 잘 내지 않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예배에 참여할까말까 합니다. 그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지만 그 행실에 있어서는 죄인과 다름없습니다. 누구도 그를 본받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친구가 없어 외롭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며 살아갑니다. 죄인의 낙인이 찍혀서 괴로워도 하소연할 때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리도 성전을 찾았습니다. 감히 가까이 하지 못한 채 멀리서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기회는 잠시 들려오는 기도소리에 마음이 무너집니다. 괴롭습니다. 자신을 향해 한탄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세리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고백이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 세리 같은 사람이라면 세상 사람들은 손가락질하고 욕을 하고 가까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스스로 죄인인 것을 말하는 사람을 가까이 할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죄지은 전과자를 온전히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신앙인들이 모여 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잘못을 했을 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는 우리 공동체에서 떨어져야할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베어버리기 일쑤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세리라면 우리에게 어떤 기회가 있을까요? 네 맞습니다. 자신을 정직하게 고백할 기회입니다. 회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슴을 치며 주님께 자복하는 심령이 기회입니다. 그리고 그 기회에는 꼭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주는 용서 혹은 ‘수용으로서의 환대’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그것을 잘 보여주십니다.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리새인입니까? 세리입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바리새인이 되십시오.’ 혹은 ‘세리가 되십시오.’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모습이 다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표현을 좋아합니다. ‘용서받을 죄인’과 ‘용서받은 죄인’인 우리가 주님께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바리새인처럼 열성도 있고 본이 되는 신앙인의 모습, 그리고 동시에 자기 발견을 통해 겸손한 모습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나쁜 점을 공통적으로 가지지 마십시오. 나쁜 것은 나쁠 뿐입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모습은 바리새인이든지 세리이든지 주님 앞에 겸손하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어야 합니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높아지게 되는 것은 주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영어 본문에 보면 “I tell you that this man, rather than the other, went home justified before God.” 하나님 앞에서 이 사람이 의롭다고 인정받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롭게 하셨습니다. 약속의 말씀에 근거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게 하십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 앞에 우리의 심정을 통하여 회개하고 돌아서면 됩니다. 그리고 바리새인의 삶처럼 바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한국에 있는 친구의 그 친구를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누구인지 이름도 모릅니다. 다만 그가 지금의 삶에서 주님께로 돌아가는 사람이기를 그래서 주님 품에서 기쁨과 안식을 얻기를 바랍니다. 바리새인이든 세리이든 주님을 만나서 변화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의 모습에서 고쳐야할 것이 있다면 정직하게 고백하고 돌이키십시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아십시오. 분명 주님을 우리를 고쳐주십니다. 회복하게 하십니다. 돌아오십시오.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풍성하게 은혜주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