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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

대강절 첫 번째 주일 : 희망의 빛/ 보랏빛 초로 밝히는 희망



로마서 13장 11절~14절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개역개정)



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성령강림절기가 마치고 오늘부터 대강절 4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대강절은 예수님의 탄생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교회력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입니다. 대강절은 ‘기다린다’ 혹은 ‘나타난다’는 말로서 라틴어 Adventus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대강절은 나타나는 절기, 기다림의 절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강절의 특징은 기다림에 더 의미가 있습니다. 구약의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선지자들이 우리를 구원할 메시아가 올 것이라고 예언을 했고, 그 예언으로 백성들은 속히 주님이 오시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나타났을 때, 소수의 사람들만 맞이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메시아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었고 이야기 했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나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은 전혀 주님을 알지 못했고, 오히려 주님을 대적하기만 했습니다. 그토록 갈망하던 메시아를 수많은 사람들이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또한 예수님이 다시 ‘심판의 주’로 재림-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기다리는 주님은 바로 다시 오실 메시아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그 때와 시기는 하나님 외에 아무도 알 수 없음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세상의 소리에 미혹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만 우리는 주님이 분명히 다시 오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리하여 말씀드리면 대강절의 특징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림입니다.


살아서 주님을 맞이하든, 죽어서 주님을 맞이하던 중요한 것은 언젠가 우리는 반드시 주님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영광스럽게 주님을 만날 것인가, 아니면 심판의 주님으로 만날 것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기다리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럼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기다림을 통해 희망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전한 편지 가운데 한 부분입니다. 바울은 임박한 재림의 날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때와 시기를 알 수 없었지만 우리의 구원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날이 전보다 훨씬 가깝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11절). 이런 배경에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이제는 ‘자다가 깨어야할 때가 되었다’고 선포합니다. 이 시기는 연월일이 정해진 시간의 개념이 아닙니다. 봄여름가을겨울 같은 계절처럼 어떤 특성을 가지는 때를 말합니다. 즉 지금 자고 있을 때가 아니라 깰 때라는 것입니다. “깨어있으라!”는 바울의 메시지는 사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에 기인합니다. 그것은 열 처녀 비유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비유의 결론은 ‘그런즉 깨어있으라’는 것입니다.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나 그렇지 않는 다섯 처녀나 모두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단지 다른 것은 준비하고 있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던져주신 교훈은 깨어있으라 더디 오는 것 같지만 반드시 주님은 오신다. 잠을 자지 말고 깬 상태(keep awake)로 있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에게 내려진 주님의 명령은 “깨어있으라”(keep watch)는 말입니다. “깨어있으라 곧 네 영혼 내면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라. 죄를 조심하고 선한 일을 하도록 힘쓰며 언제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라.”하시는 것입니다.


어둠의 때가 지나고 아침이 올 때가 되었으니 깨어 있으라. 주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셔서 세상의 어두움에 희망의 빛을 던져주고 다시 오마 하시고 가셨습니다. 분명 주님은 우리에게 빛의 자녀처럼 행하라고 하시며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깊은 어둠은 빛을 불러 오는 것처럼 이 시대와 세상이 어두워져갈수록 주님의 몸 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희망의 등불이 되어 세상에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을 말로 전하거나 글로 표현하거나 주장하고 논리로 따지는 것으로 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삶이 우리에게 교본이 되어주셔서 배우고 확신하게 된 것처럼 우리의 삶으로 빛을 비춰야 합니다. 때문에 바울을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통해 세상의 빛으로 삶을 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우리의 삶의 터전은 어둠 속의 세상입니다만 우리 본연의 모습은 빛의 자녀(엡 5:4)입니다. 때문에 비록 어둠 가운데 살지만 낮에 속한 사람으로서 단정히 행동하십시오. 그 다음에 나온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고 호색하고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라는 내용은 어두움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삶을 어둠에 머물게 하고 빛을 갉아서 퍼지지 않게 합니다. 솔로몬은 잠언 23장 29절 이하에서 이것을 하나로 묶어서 말하였습니다. 술에 잠긴 자들에게(30절) 분쟁이 있고, 까닭 없는 상처가 있으며(29절) 그들의 눈에는 이상한 여인들이 보일 것 이라(33절)는 내용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깨어있어 빛의 자녀로 살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세상 정욕을 따라 육신의 일을 계획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재탄생하고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는 순간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따라 구할 수 있는 것은 넘치는 음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용할 양식으로 하루에 맞는 양을 공급해달라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만나서 먹었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매일 적정량의 만나를 얻었습니다. 많이 거둔 사람도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았습니다. 안식일이 되기 전날에는 평소보다 많은 만나를 얻을 수 있었지만 썩지 않았고 하루지만 보관도 가능했습니다. 그들은 광야 생활 40년 중에 만나를 계속 공급받았습니다. 하지만 메추라기는 조금 다릅니다. 그들은 육신의 만족을 위해 고기반찬을 찾았습니다. 원망하고 이를 갈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얻은 교훈은 무엇이었습니까?


바울은 오늘 편지로 우리에게 주님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에게 주님은 희망의 빛으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시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세상의 빛이 되어주신 것을 본받아서 제자인 우리가 세상의 희망의 등불이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세상에 너희 빛을 밝게 비춰라! 그러기 위해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의 모습을 제거하고 빛의 자녀로서 단정하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우리에게 태생적으로 주어진 욕심을 제어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정욕을 위해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것은 어둠의 일입니다. 두려움에 휩싸여 사는 것도 어둠의 영역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을 도모하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 것을 당부하십니다. 육신의 정욕을 따라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일을 찾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희망의 빛으로 오신 예수께서 밝혀주신 빛을 따라 구원의 여정 가운데 승리하기를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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