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합당한 삶
복음에 합당한 삶
Conduct Yourselves In A Manner Worthy Of The Gospel Of Christ!
빌립보서 1장 27~30절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Philippians 1:27~30
27 Whatever happens, conduct yourselves in a manner worthy of the gospel of Christ. Then, whether I come and see you or only hear about you in my absence, I will know that you stand firm in one spirit, contending as one man for the faith of the gospel 28 without being frightened in any way by those who oppose you. This is a sign to them that they will be destroyed, but that you will be saved--and that by God. 29 For it has been granted to you on behalf of Christ not only to believe on him, but also to suffer for him, 30 since you are going through the same struggle you saw I had, and now hear that I still have.
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찬양과 감사가 넘치는 주일 아침에 본문의 말씀으로 여러분과 함께 제가 받은 은혜를 나눌 수 있게 되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런 은혜를 나누는 일이 자주 반복되어 주님과의 깊은 교제가 이루어지고 여러분 서로서로 사귐이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믿는 사람들의 사귐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것(요일1:3)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귐은 기쁨을 근간(root)으로 하고 있습니다. 기쁘지 않은 사귐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기쁨이 없으며 그리스도와 사귐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서 기쁨이 없고 평안이 없으면 뭔가 잘 못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그러한 맥락에서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명령하시는 말씀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함께 나누며 은혜 가운데 머물려고 합니다. 함께 이 은혜를 나누고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강 가운데 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으면서 빌립보지역의 성도들에게 들려온 소식을 듣고 그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전하고, 옥에 갇혀 있지만 그 일로 복음의 진보가 있다는 것을 알려서 안정을 찾게 하기 위해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물론 빌립보 교회 안에 분쟁이 있었고 거짓 교사의 가르침으로 혼란한 모습을 정비하고 어려움에 처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 다른 어떤 서신보다도 빌립보서에는 기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삶에 기쁨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빌립보는 로마시대에 특별한 대우를 받은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로마에 사는 것처럼 대우를 받았습니다. 로마의 황제는 은퇴한 로마 군인들을 빌립보로 보내어 은퇴생활을 하도록 했고 때문에 그곳에서는 인두세와 토지세금이 면제되었습니다. 때문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로마시민이라는 것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곳은 다른 헬라의 도시처럼 혼합적인 다신 숭배의 신앙이 팽배하였습니다. 특히 점쟁이를 통해 불안한 자신들의 삶을 알아보고 자신이 겪는 숙명을 극복하려고 하는 풍토가 강했습니다. 이러한 점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꾼 꿈을 통해 주님의 명령으로, 아시아로 향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마케도니아를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두 번째 선교여행에서 마케도니아의 중요 교통의 요지이며 제일의 도시인 빌립보에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의 사역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두 번이나 연보를 해서 선교사역을 도왔습니다. 마케도니아 지역의 선교에서 그들은 바울을 전심전력으로 도왔습니다. 이제 로마에 갇혀있는 바울의 소식을 듣고 지역의 감독인 에바브로디도에게 교회의 소식을 전하게 했으며 재정적인 후원을 하였습니다. 그들의 헌신에 바울은 깊이 감사하고 그들이 믿음의 성장에 대한 증거를 볼 수 있었기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들을 신앙으로 인도했던 바울이었기 때문에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더욱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바울은 그래서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권면합니다. 그가 권면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그리스도와 무슨 일이 있어도 연합한 자로 있으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2차 선교여행에서 환상을 보고 마케도니아의 중심지인 빌립보를 방문하였으며, 3차 선교여행에서도 빌립보를 두 번 방문하였습니다. (에베소에서 고린도로 가는 길에 빌립보를 방문하였고 고린도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방문했습니다.) 때문에 성도들은 바울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후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 성도들이었기에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가서 그들과 함께 있든지 떠나 있든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을 가지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얼마나 강조했는지 빌립보서에서 복음에 대한 언급을 아홉 번이나 하고 있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한 마음과 한 뜻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과 연합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항상 먼저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삶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 복음의 신앙을 위해 공동의 마음과 정신으로 함께 애쓰며 수고하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드린 말씀과 중복되는 것 같지만 꼭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힘쓰고 애써야 하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기본적인 삶을 위해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고,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직업을 갖고 열심히 삽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 더 중요한 가치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복음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위해 사는 것은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신앙의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이것입니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한 마음을 가지고 한 뜻을 향해서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한 신앙공동체입니다. 소위 믿음의 가족입니다. 교회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지만 모두 한 가족이며 한 운명공동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명령에 의미를 두고서 이 문제를 살펴보면 신앙인의 공동체적인 특성을 간과하지 말라는 당부가 담겨있습니다. 개인이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으로서 살게 되었다면 혹은 그것을 목표로 살아간다면 반드시 공동체가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세 번째 당부에 담겨 있습니다.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은 복음의 진보를 막고 복음의 신앙을 바로 세우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두 주인 사이에서 주저하게 만들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영광만 아니라 마땅히 받을 고난을 회피하게 합니다. 우리가 주를 믿는 것은 십자가 사건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영광의 상징이며 동시에 고난의 상징입니다. 찢기고 부서지는 고난의 현장이며 동시에 죽음을 이긴 영광의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손에 못 자국 난 것을 보고 옆구리에 찔린 창 자국을 만져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믿고 믿음 가진 사람이 되라하셨습니다. 우리는 영광이며 동시에 고난의 상처로서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십자가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멸망의 증표이며 어리석은 길이고 가증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구원의 증거이며 동시에 영광의 열쇠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지고 갈 십자가가 있습니다. 누구도 이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이 십자가를 통해 시작되고 끝이 납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속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고난도 받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다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고난을 통해 주님을 더 가까이 주님의 사랑을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과 권면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도 십자가를 통해 받은 은혜와 고난이 함께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면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난 선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의 결론은 십자가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고 은혜를 깨닫게 하는 도구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쉽게 그 사실을 바울의 전한 복음을 통해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입니까? 오직 그리스도와 연합한 상태로 사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여러분은 그 몸의 지체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은 지체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 말은 우리가 한 마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한 뜻 곧 하나님의 뜻으로 살아가야 함을 힘 있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십시오. 신명기 20장 3~4절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하지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말미암아 놀라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들려지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두려워 마십시오. 다만 복음에 합당하게 살기를 위해 노력하십시오. 주님을 찾고 찾으면 만나주실 것입니다. 주님께 부르짖으면 들어주십니다. 우리가 사는 일에 대하여 주님은 이미 많은 것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우리의 구할 것은 세상적인 것과 싸우며 애써 주님을 찾아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버리지 마십시오. 주님을 버리지 않는 이를 주님이 버리시지 않습니다. 따라 가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문을 열면 주님께서 동거하시고 함께 하십니다. 이러한 근본적인 사귐이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래서 우리의 삶이 기쁨으로 가득 찬 삶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이를 위해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주님께 간구합시다. 주님께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도록 함께 하시는 주님을 놓치지 않도록 힘을 달라고 간구합시다. 주님과 함께 있기에 두려움에 휘둘리지 않도록 믿음을 더해주세요 기도합시다.
할렐루야! 아버지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우리의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약속하신 말씀대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살도록 인도해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