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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보는 이들에게


누가복음 14장 1, 7~14절

1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7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2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13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14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무엇인가 호기심에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껌을 씹으며 걸어가는 젊은 여자, 총총걸음으로 서류뭉치를 품고 서두르는 작은 키의 아가씨, 한 손에 신문지 다른 손엔 서류가방을 든 노신사, 정장에 짙은 선글라스를 남자. 그러더니 길을 건너려고 하는 한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양손에 가득 짐을 가진 할머니를 유심히 보던 그 사람은 갑자기 몸을 일으켜 할머니를 향했습니다. 그러더니 덥석 할머니의 짐을 빼앗듯 들어 어깨에 걸치더니 한손으로 할머니를 붙잡으며 길을 건너가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는 연신 얼굴을 쳐다보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넵니다. 그는 길을 다시 건너 먼저 있던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씩하고 하얀 이를 보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거기 한 노인의 초상화가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지어본 것입니다. 여러분은 짧은 이야기 속에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하셨을 겁니다. 몇몇 단어들은 호기심과 긴장을 유도하려고 했고 숨죽이며 그 사람의 모습을 상상하도록 자극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유난히 호기심 찬, 아니 어쩌면 의심에 찬 눈초리로 본다는 것이 더 맞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예수님을 ‘감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부러 예수님을 식사자리에 초대했습니다. 예수님을 지속적으로 감시하려고 했습니다. 본문에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는 본문의 어법상 의미는 그들이 감시를 계속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율법준수의 여부를 면밀하게 따져서 고발의 조건을 찾으려는 암중계획을 가지고 식사자리에 초대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사실 바리새인들이 사람들을 초대해서 식사를 하는 것은 율법을 지키려고 한 것입니다. 안식일에 회당에서의 의식을 마치고 난 후에 빈부에 상관없이 사람들을 초대하고 접대하는 것은 랍비들의 가르침이었고 종교적 의무로 받아들여졌답니다. 안식일에 그들과 함께 식사에 초대받아 바리새인들의 두령 곧 대표되는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거기서 수종(水腫)병 든 사람을 보았습니다. 예수께서 살던 때에 수종병은 부도덕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 나는 병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왜 이 사람이 식사자리에 와 있었는지 잘 모르지만 예수님은 거기 함께 모인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것이 합당한 일입니까 아닙니까? 그들은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뭐라고 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는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그들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너희 중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이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아무도 예수님의 말씀에 답하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율법엔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일부러 답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뭣이 중헌지 알지도 못하믄서” 예수님을 엿보고 있던 이들은 크게 당황했을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엿보는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예수께서 그들을 엿보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전통적인 식사자리는 디귿(ㄷ)자 모양으로 각 변마다 중앙 자리가 상석(上席)이었습니다.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자리가 정해져 있었고 가장 귀한 손님은 대개 나중에 도착하여 앉는 것이 관례였다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 혹은 율법학자들은 일반 사람들에 비해 높은 신분과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잔치의 상석을 주로 차지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모습을 본 예수께서 잔치자리에 대한 비유를 들어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잔치의 상석에 먼저 앉지 말라는 교훈은 겸손한 삶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먼저 와서 상석을 차지하려는 욕심을 버리라는 뜻도 됩니다. 교만하고 욕심 많은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잠언에는 그런 사람을 망령된 자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없다는 듯이 언사를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죄인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벌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대부분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려는 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도 이러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면 회개하고 주 앞에 낮아지고 겸손한 성품으로 바꿔져야 하겠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미움을 받게 됩니다. 그런 사람 앞에서는 지위나 신분 혹은 이익 때문에 고개를 숙이게 될지 몰라도 반드시 욕을 먹게 됩니다. 잔치 상석을 좋아하다 망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아각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었습니다. 교만하고 욕심 많던 하만은 결국 자기 꾀에 빠져 망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주신 교훈은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문법적으로 이 문장을 살펴보면 낮아지는 것과 높아지게 되는 것은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어떤 주체가 낮아지게 하고 높아지게 한다는 의미인 ‘수동태 문장’입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이렇게 수동태 문장이 주체 없이 나타나는 경우는 하나님이 그 행동의 주체가 됩니다. 그러니까 교만한 사람을 낮추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고, 겸손한 사람을 높이는 이도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또한 하나님은 각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교만한 사람과 겸손한 사람을 알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태도를 어떠해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자신을 청한 바리새인의 지도자에게 율법을 지키려는 뜻은 좋지만 더 좋은 것을 알려주십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려거든 너를 다시 초대해서 갚음이 되게 하는 사람을 초대하지 말고 차라리 가난한 사람, 나그네, 장애인 같이 너에게 갚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을 초대해서 복이 되게 하고 의인의 부활 때 갚음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초대의 동기가 의로움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동기가 불순했다는 점에서 그를 지적하는 내용이 될 수 있지만 오늘 본문을 읽는 우리에게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어떠해야 합니까?

이 말씀을 들으면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주님 앞에 산다고 성도라고 그리스도인이라고 제자라고 하면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솔직하게 주님께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행여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에 비추어 잘 살지 못했다면 이 시간을 회개의 기회로 삼고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선지자의 입을 통해 주님께서 하신 말씀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돌아오는 사람을 받아주시고 용서하십니다.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주님께서 바라시는 삶은 사랑의 동기로 사는 삶입니다. 엿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사랑으로 보십시오. 초대하여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대가를 구하지 말고 사랑으로 초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가까이에서 여러분을 보시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않으시는 한분 한분의 일생이 되길 바랍니다.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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