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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의 소망

HOPE



시편 146편 1-5절

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2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6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8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9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10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개역개정)


Psalm 146.1~10 (NIV)

1 ​Praise the LORD. Praise the LORD, O my soul. 2 I will praise the LORD all my life; I will sing praise to my God as long as I live. 3 Do not put your trust in princes, in mortal men, who cannot save. 4 When their spirit departs, they return to the ground; on that very day their plans come to nothing. 5 Blessed is he whose help is the God of Jacob, whose hope is in the LORD his God, 6 the Maker of heaven and earth, the sea, and everything in them--the LORD, who remains faithful forever. 7 He upholds the cause of the oppressed and gives food to the hungry. The LORD sets prisoners free, 8 the LORD gives sight to the blind, the LORD lifts up those who are bowed down, the LORD loves the righteous. 9 The LORD watches over the alien and sustains the fatherless and the widow, but he frustrates the ways of the wicked. 10 The LORD reigns forever, your God, O Zion, for all generations. Praise the LORD.


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견뎌내기 힘든 일이 있을 때 사람은 그 일에 대해 여러 단계를 거쳐 수용하게 된다고 합니다. 처음엔 강력히 부정하다 분노가 일어나고 타협을 지나 우울해지다 수용하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죽음이라는 강력한 사건에 임박했다고 생각했을 때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반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 과정이 조금 달라집니다. 보다 빨리 수용단계로 옮겨가게 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소망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이 있다고 믿는 믿음은 그 상황을 이겨나가게 합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에 그 환난의 시기에 즐거워할 수 있게 됩니다(롬5:4). 이것은 자연인이 가질 수 없는 놀라운 과정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바라는 것들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확신한다는 것이 믿음이라고 정의(定義)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앞으로의 일에 대한 확신이며 동시에 그 결과입니다. 그것은 소망 가운데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소망은 현재며 동시에 미래지향적입니다. 물론 사랑에 대하여는 모든 시점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본문의 시편기자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본문은 영원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저는 하나님에 대하여 좀 더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는 언제나 지금 여기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현재적으로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이해하기 어렵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의 ‘임마누엘’과 하나님이라는 말이 합해져서 우리는 하나님을 임마누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것은 우리의 의식이 있고 존재가 계속되는 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의 존재가 우리의 존재와 함께 있게 되는 것이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은 또한 예수님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의 이름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실 때 우리도 그와 함께 죽었고, 다시 살아나셨을 때 우리가 다시 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이것을 분명히 알게 할 뿐 아니라 그 안에서 살게 하십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신 약속을 믿는 믿음, 그 안에 있는 소망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항상 그 믿음의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존재는 그 믿음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삶을 사는 동안 이것을 무너뜨릴 창수는 없습니다. 누구든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은 집을 반석위에 지은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 주초가 반석 위에 있기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 반석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나인이라는 동네에 예수께서 전도하시러 가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뒤따라갔습니다. 그 촌의 어귀에 다다랐을 때에 어느 청년의 장례 행렬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뒤따르는 어머니는 과부였고 동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려고 따라 나섰습니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 죽은 청년은 그 과부된 어머니의 유일한 자식이었습니다. 주님은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자식의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것입니다.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식이 있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고 울음을 참지 못합니다. 멍하니 앉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가슴 한 복판이 무거운 짐에 눌린 듯 그런 느낌이랄까?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무너짐 속에서 한 줄기 소망마저 없는 그런 상황이 부모나 그 일을 겪는 주위 사람들에게 있게 됩니다. 화도 오르게 되고 어찌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또한 좌절감, 우울감이 들기도 합니다. 실성한 사람처럼 될 수도 있고 애써 잊으려고 다른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풀지 못한 상실은 그 마음과 몸을 구속하게 됩니다. 이렇게 꼼짝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감정을 이겨내라, 울지 말라, 슬퍼말라고 한다고 될 일이 아닐 것인데... 주님은 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욕이라도 할 수 있다면 했어도 될 상황이었습니다. 당신이 뭔데 내게 울어라 울지 마라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을 하시고 동시에 예수님은 장례행렬을 멈추도록 죽은 자의 관에 손을 대셨습니다. 그 일은 모든 율법을 어기는 동시에 관습에도 불경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뚜껑이 없는 그 관안에 누운 시체에게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셨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죽음이라는 것은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에게 필요한 과정입니다. 그 죽음은 반드시 생명이 있는 존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한 존재의 종말은 죽음으로 나타납니다. 그 죽음으로서 생명을 가진 존재들은 자신이 가진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가치 있는 것인지 알게 됩니다. 죽음을 경험하는 존재들은 그 과정에서 소망을 품습니다. 생명으로 이어지는 소망은 주님을 발견하게 합니다. 이유는 주님은 그 모든 과정에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은 죽음을 이기고 새 생명을 얻게 합니다. 소망이 여기 있습니다.

인생은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이는 그 생명의 소망이 생깁니다. 시편기자는 그래서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 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왜냐면 인생은 언제 어떻게 죽음으로 향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한 것 입니다. 그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본문 6절부터 10절까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여러분에게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분에게 우리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암울한 미래, 우리가 경험하는 억울한 현재에 대해 소망이 있다고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지 그분의 위로와 힘주시는 소망에 단단히 서있기 원합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내 평생에 주를 찬양하라 내 삶 가운데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라.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소망이신 하나님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삶에 항상 함께 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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