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기도하시다
요한복음 17장 20-21절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여러분,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하신 말씀이 지난 한 주간 동안 제게 이루어졌습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10장 17절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부터 말미암는다고 고백한 성경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순절이 시작한 지난 2월 10일부터 저는 시간 나는 대로 성경을 듣기로 하고 스마트폰 App을 이용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 말씀을 듣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접게 하는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기도하면서 반성하고 때로는 말씀이 주시는 위로를 받아 웃기도하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내용인즉, 말씀이 반복해서 저와 만나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계속 듣다가 귀에, 가슴에 남았던 말씀이 지난 주간 기도회에서 반복되어지고 그리고 또 다른 분이 보내준 ‘톡’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뜨거운 마음이 솟아올랐습니다. 더욱 놀란 것은 어제 밀알에서 봉사를 하는 두 딸을 픽업하려고 간 교회 화장실에서 이 말씀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이렇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참 좋으신 하나님 제게 말씀을 들려주시고 힘을 주시고 점점 명확하게 알도록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러한 말씀의 역사가 여러분에게도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택함 받은 이스라엘의 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으로서 자긍심이 대단합니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을 갈대아인의 우르(Ur of the Chaldean)에서 택하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불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택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곧이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늘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하여서 하나님께 매를 맞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식같이 여기시고 징계하셨지만 이스라엘은 매번 도망하듯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시작된 이래로 그 일은 반복되었습니다. 사사시대를 지나 왕정시대를 거쳐 바벨론 포로시대를 지나도록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하나님을 제대로 섬긴 적이 별로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매
하나님의 사랑과 인자하심은 그들을 향해 분을 발하실 정도로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 막대기와 인생채찍으로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아들 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게 되었습니다. 주전 587~586년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침공하여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죄는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에서 심판의 대상이 되는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경건의 삶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멸망 받아야 할 그들에게 하나님은 구원과 회복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방 땅에 사로잡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지니고 회복될 이스라엘 나라의 주체로서 회복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왔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행한 윤리적으로 바른 생활을 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은 이방에 실추된 자신의 이름, 영광을 받아야 하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그들을 회복시키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스겔서에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선포가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라는 표현이 57회 나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스스로 일하시는 분이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사적인 하나님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그처럼 준비하시고 섭리하시고 역사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소외시키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참 따스한 분이십니다. 스스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시고 모든 일을 척척 이루실 수 있으신 능력과 권세가 있으심에도 자신에게 늘 불순종하고 원망하고 심판받을 짓을 골라하는 이스라엘을 사랑의 눈으로 보시고 계십니다. 주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속에 들어가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시고 육신의 굳은 마음을 제거하시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에게서 정결하게 하시겠다(겔36:25~27)고 하셨습니다. 친히 그들과 우리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아이들을 키울 때 부모로서 자식들이 대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어느덧 자라서 자기 스스로 혼자서 무언가를 할 때 부모는 그 자녀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고 내 심장을 주어도 괜찮은 그런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하여도 자식들은 부모에게 한 없이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식으로 여기시고 스스로 아버지라고 하시며 어버이의 마음으로 자녀 이스라엘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젖먹이는 어미가 그를 잊겠느냐?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은 결과적으로 그들을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서 그들을 제외시키지 않는 그래서 그들 가운데서 메시아를 보내시는 일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가 기도하시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일은 그런 하나님이 그들의 어떤 것을 요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해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선지자 에스겔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일까요? 에스겔 36장 3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Jesus prayed for him and His people. 예수께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간구하심은 모든 사람을 위해 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신 이가 기도하고 계십니다. 누구를 위해 하시고 계십니까? 우리를 위해 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네 맞습니다. 우리에게 본을 보이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세상에 오셔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순종하시며 모본을 보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의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늘 예수께서는 기도하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목숨을 걸고 40일을 금식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세우실 때도 기도하셨고,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실 때도 기도하셨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실 때도 기도하셨고 죽으러 가실 때에도 밤을 지새우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심지어 죽음의 자리 십자가에서도 예수님은 중보와 함께 자신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제자들과 제자들을 통해 복음을 들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한 구절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입니다.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십니다. 우리는 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구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들이 나에게 구하여야 하겠다고.
우리에게는 풍성한 삶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놓고 네 입을 넓게 열라고 하셨고 내가 부어 주리라 하셨습니다. 부르짖으면 들으시고 응답하시겠다고 하셨고 네가 알지 못하던 크고 비밀한 것도 알려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네는 내게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이루리라고 하신 말씀은 어떻습니까? 나는 너에게 응답하는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은 무엇을 위함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하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필요도 알고 구할 것도 아시지만 기다리고 계십니다. 뭘 기다리고 계십니까?
저는 말씀을 나누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그리고 선하신 모습을 봅니다. 창조주이시고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며 그 손으로 지으시고 입히시며 먹이시고 품어주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너는 내 것이라 하시며 우리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시지만 결코 폭력적으로 행하시지 않으시는 자애로우신 하나님을 봅니다. 누구도 그 사랑에서 우리를 빼앗을 자가 없다고 선언하시며 집 떠난 자식을 기다리시는 어버이를 봅니다. 그 자식이 돌아왔을 때 불쌍하게 여기고 달려가 목을 끌어안으시고 입을 맞추시고 기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그를 그렇게 기다리셨던 것처럼 우리가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달라고 구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주 예수께서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가 그 약속을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은 까닭이며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인 것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구하기를 기다리고 준비하시고 계십니다. “Let it be so now; it is proper for us to do this to fulfill all righteousness. 지금 그렇게 합시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뜻을 이루도록 하십시다.”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까? 라는 질문이 우리에게 남겨집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여야 할 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셨듯이. 주의 음성 듣기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기도하십시오. 주님과 더 가까이 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