푯대를 향하여 가자
이사야 43장 18-21절
16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17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18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빌립보서 3장 12-16절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을 만나 여러분과 오늘 귀한 말씀을 나눌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이 말씀에 대하여 할 말이 많이 있지만 주님께서 도우셔서 필요한 말씀을 하게 하시고 듣게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의 은혜를 부어주시길 바랍니다. 아멘.
다윗이 지은 시편 가운데 그의 대적 곧 사울과 그를 비방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신원 혹은 탄원 하는 내용이 여럿 있습니다. 그 가운데 시편 13편을 보시면 그가 하나님께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탄원을 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들어보면, 그는 그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 상황들에 대하여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며 자기를 돌아봐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다윗은 그의 고백에서 오직 주님의 사랑만 의지하고 주의 구원을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시136:5에서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한결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성경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기억하면서 장차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위해 큰일을 계획하시고 그것을 통해 구원 사역을 이루실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꿈을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그 꿈은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러 하나님의 백성 삼으신 까닭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조상들을 홍해를 가르시고 구원해주셨고, 그들을 쫓아오는 이집트 군사들과 병거들을 일시에 수장시켜 다시 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일은 영원히 대대로 기억할만한 사건이었고 유대인의 절기 때마다, 그들이 안식일에 모일 때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사건을 반복하여 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고 난 후에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 앞에서 회개할 때 이 이야기는 반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 이야기, 하나님을 다시 믿게 되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홍해와 같은 장애물도 가르시고 건너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기억하면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로 전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그 일을 잊어버리라고 합니다. 그 일을 다시 기억하지 말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들의 조상들이 구원을 받았는지 잊으라. 어떻게 그 일을 잊겠습니까? 어떻게 그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을 잊을 수 있습니까? 이사야는 궁금하고 백성들은 의아해하였을 것입니다. 이 보다 더 놀라운 이야기가 어디 있습니까? 물이 갈라져 바다를 육지처럼 건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 그 일을 잊으라고 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시길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증인, 하나님의 종으로 택함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유일무이한 신 하나님께서 친히 구원자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희들의 왕이 되고, 너희의 거룩한 자이며, 이스라엘을 창조하시고 지으신 자가 나 여호와라고 선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시는 말씀은 곧 내가 너희 하나님이니 나를 믿어라. 그러면 너희 조상들이 경험했던 홍해의 기적보다 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런 뜻에서 그 일을 잊으라고 하였습니다. 그 일을 기억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새 일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새로운 일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광야 같고 사막 같은 곳이 변하게 되는 일입니다. 광야에는 물이 흐르고 사막에 강을 내는 일입니다. 그래서 택한 백성들이 그것을 마시게 하고 그들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지음을 받은 까닭은 바로 그것입니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려드리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심으로 놀랍게 성취되었습니다. 소외당하고 고난 받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친히 생명수가 되어주시고 자기 몸을 내어주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분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문이 되셨고 그를 통해서 만민들이 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그를 믿어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해주시는 일이 있게 되었습니다. 다른 이름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이름뿐입니다. 이 일을 위해 예수께서는 사도를 세우시고 성도들을 세우셔서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이후 사람들은 비록 주님을 직접만나지 않았어도 그 증인들의 증언을 통해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그 믿음으로서 주를 만나고 경험하고 구원의 반열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복음이고 구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 곧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을 받은 주님의 일꾼이었습니다. 그가 전하는 복음을 통해 당시의 세계 사람들에게 오늘 우리들에게 주 예수의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바울을 우리가 믿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전한 복음 곧 복음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습니다.
바울은 항상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에게는 항상 주 예수 그리스도가 목표였습니다. 다른 것을 바라보지 않으며 오직 예수님만 쳐다보고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과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따라 사는 사람. 그를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 부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좀 더 깊게 들어가면 믿음으로 구원 받고 구원 받은 표로서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믿음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가 세상에서 유대인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통해 얻은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을 보고 달려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바울은 자신이 가진 율법의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서 주님의 말씀과 대조하고 분석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말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평생 주님을 따라 살기로 하였고 그 길을 갔습니다. 그의 목표는 한가지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구원받는 것을 기대하고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적인 완전함을 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완전한 순종과 완전한 사랑으로 되는 그리스도의 완전에 동참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은 정직하고 순수하였습니다. 그는 그것을 아직 이루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오직 그것을 잡으려고 순순한 마음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때문에 뒷일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해 갑니다.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표를 보면서 최선을 다해 달려갑니다. 모세를 통해 엄청난 기적을 체험한 이스라엘, 그 일을 듣고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역사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바울은 그 사건들을 잊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새 일 곧 온 세계를 구원하시는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놀라운 일을 보라고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하고 꼭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께서 사흘 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주님께서 부르셔서 그 믿은 바를 타인에게 전하고 배우고 확신한 것 가운데서 살라고 하시는 권면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다 아는 내용이지만 중요한 것은 믿고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서 영적으로 탄생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중생한다고 하는 경험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갓 태어난 아이처럼 양육을 받아서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 곧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용 받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점을 기억하고 주님 앞에 목표를 분명히 하고 나아가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어느 단계에 있든지 영적으로 성숙하고 성장하려고 우리의 믿음의 경주를 이어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완전함을 추구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 닮아가는 것의 최고 최선은 바로 똑같이 닮는 것입니다. 우리의 한계와 부족함으로 인해 할 수 없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강하심과 돌보심을 경험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 갈 때, 얼마나 주님을 닮았는지 그 모습을 통해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이를 위해 기도하면서 신앙의 모본이 되는 이들을 따라 행하여야 합니다.
바울은 담대히 빌립보 교인들에게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는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도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을 따라서 자신을 본받아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사람이 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좋은 경지에 이른 사람들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그들은 여러분을 섬기는 사람이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주위에서 그런 사람을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함께 본받아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행하십시오. 주님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셨지만 우리와 같이 낮고 천한 몸으로 오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심으로 섬겨 영광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우리도 그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변하여 영광의 몸의 형체로 변하게 하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와 능력이 함께 하시길 축복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 까닭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각자는 성경에 나타난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찾아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습니다. 그 자녀의 모습도 각양각색일 것입니다. 또는 구원 받고 새 사람이 되어서 성장, 성숙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거나 혹은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어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거나, 혹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삶을 살기도 할 것입니다. 각각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합당한 직분과 사역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역이 있다고 믿습니다. 맡은 바 사역이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충성입니다. 계속 그 일을 충성스럽게 이어 나가십시오. 그리고 아직 훈련 중이거나 성장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그 믿음의 분량대로 계속되는 성숙의 과정들을 이어 가십시오. 그러한 성도는 결국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역에 초대되어 성숙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오직 주의 하여서 그리스도의 십자자의 원수로 행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욕심을 따라 살지 마시고 땅의 일을 생각하고 추구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속한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여서 그 주인 되시고 왕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여 다시 오시기까지 그대로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날까지 여러분에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