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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있었던 일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10장 1~13절

1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9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12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3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어떤 나라나 민족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언제나 필요하고 좋은 일입니다. 그 민족과 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기록하고 이를 통해서 현재를 조명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도구로 가장 귀하게 사용될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바로 기술되어야 하고 역사교육은 언제나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비록 민족과 나라의 역사만 아니라 자기가 소속한 공동체 즉 가정과 학교 직장 등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언제나 공론(公論)되어야 하고 역사를 통해 얻어진 이해(理解)와 미래에 대한 통찰(通察)을 함께 나누며 성장(成長) 발전(發展)하는 초석(礎石)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어느 민족 어느 공동체이든지 건강하고 바르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신앙공동체인 우리에게도 필요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는 성경본문은 그 역사를 나누며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달은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알려주는 것으로 교훈과 함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귀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상고하고 나누면서 우리 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피차 나누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민족의 역사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것으로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기를 바라고 있습니다(1절). 그러면서 그 이유를 역사 속에 나타난 것을 통해 현재를 보는 거울을 삼을 수 있고 바른 삶을 살도록 지침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1절).


사도 바울이 정리하고 있는 이스라엘 역사는 그 민족의 영원한 지도자로 여기는 모세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손으로 이집트에서 건져낸바 불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심을 받아 길을 가고, 바다를 가르고 그 가운데로 지나게 하시고 반석을 갈라서 물을 마시게 하시며 하늘을 열어 신령한 음식을 먹게 하신 것을 통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신 일과 함께 자신들에게 이와 같은 일들을 나타내셨다고 역사를 신앙공동체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비춰서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같은 우리 죄를 씻어 새롭게 하는 세례를 받았고 주께서 주신 자신의 몸과 피로써 신령한 음식과 음료를 취하게 하셨다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크신 사랑과 은혜로 이렇게 우리를 자기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바 되게 하셨음을 찬송하고 감사드립니다. 이 생각과 믿음이 우리에게 계속 기억되고 우리의 본분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약술(略述)하고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대부분 하나님의 놀라운 그 사랑과 은혜를 잊고서 각각 자기의 욕심을 따라 하나님께 죄를 범하여 광야에서 죽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악을 행하여 하나님의 미워하심을 받아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상 숭배자가 되어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금수와 버러지 형상으로 만들어 절하고 경배하다가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하나님을 시험하여 뱀에 멸망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벌을 받아 멸망당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귀한 메시지를 제공해줍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들이 광야에서 당한 일들은 우리로 하여금 경고의 메시지이며 동시에 본보기가 되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삼가며 우리의 행함에 악을 제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권고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상 숭배하는 것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우상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그 무엇입니다. 따라서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고 더 생각하고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이 되고 그 행위가 우상숭배가 되어서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바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음행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좁은 의미에서 음행은 성을 매매하거나 탐욕적인 방법으로 성욕을 채우는 것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음행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우상숭배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주신바 거룩하게 사용할 육체를 욕심을 채우는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안목의 정욕을 채우는 것, 이생으로 자랑을 삼는 것 그리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주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일은 사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가다가 두 번째로 마실 물이 없어지니 모세를 원망하며 이집트에서 왜 우리를 이끌어 와서 우리가 목마르게 하느냐고 따졌습니다. 이것은 그에게 대항하여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하여 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를 경험하였지만 불신하고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알던 이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고서 하나님께 원망하며 의심하는 사람입니다. 야고보서 1장 7절에서 이런 사람을 두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네 번째는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원망(怨望)은 말 그대로 마음에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하나님을 탓하고 분해하는 것입니다. 민수기 16장에 기록된 이야기입니다. ‘고라’와 ‘다단’ ‘아비람’과 ‘온’이라는 사람이 당을 지어서 250명을 모아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반역을 꾀하다가 그들의 가족과 함께했던 250명이 하나님의 진노로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음 날 이스라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그들이 죽였다고 그들을 탓하고 분내하며 모세와 아론에 대해 불평하고 원망할 때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염병이 시작되고 그날에 만 사천칠백(14,700)명이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철저하게 하나님의 명령과 뜻에 합당하게 행하여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우리가 보기에 좋은 대로 우리가 생각하기에 합당한 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의 기준이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거짓된 교사들이 잘못된 가르침을 주어서 성도들로 하여금 우상의 제물에 참여하고 이전으로 돌아가 헛된 것을 따르게 하였던 것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함께 사는 이방사람들의 비난과 악의를 받기보다 우상의 제물을 먹고 화평을 이루는 것을 원했기 때문에 그런 것을 주장하는 교사들을 고용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엄하게 경고하기 위해 광야에서 있었던 일들들 교훈으로 삼고자 편지에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우리에게도 적용 하면 빛이 있으나 참으로 암흑 가운데 있는 이 세대들이 빛의 자녀들에게 요구하는 원망과 비난 그리고 악의적인 반-그리스도적인 도전에 대하여 비굴하게 굴복하는 것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시험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신앙에 대한 도전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바울은 우리에게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한번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입은 사람인 나는 우상의 제사에 참여하고 그 제물을 먹고 나의 뜻을 펴며 원하는 바를 행하여도 해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구원을 받은 우리는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 곧 하나님을 경외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계획과 명령에 주의 하며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빌2:12).


하지만 우리는 바울의 권면에도 불구하고 의기소침(意氣銷沈)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 우리 주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 당함을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다가오는 유혹이나 시련을 이길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고 그것이 다가올 때에 견딜 수 있는 힘을 공급해주십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능히 이기는 자가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교훈을 얻습니다. 그 역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잘 믿고 따르며 그 말씀에 순종할 것을 요구합니다. 구약시대 모세의 일은 바울의 시대에 고린도 교회에게 해당되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권면과 경계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하는 것을 금하십시오.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시험하지 마십시오. 욕심을 따라 살지 마십시오.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오로지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행하십시오. 세상의 시비와 비 성경적이고 비 신앙적인 제의에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거기에서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상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니 하나님과 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이 여러분과 저에게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항상 떠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과 도우심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아멘. 함께 기도합니다.


주 하나님 우리의 신실하신 하나님, 우리를 도와 주셔서 주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게 하시고 주의 말씀의 빛을 비추어주셔서 우리가 가는 길을 밝혀주시고 그 길을 갈 때에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시고 함께 하여 주옵소서. 시험에 들게 마시고 악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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