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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기쁜 빛이라 전해라



이사야 60:1~5

1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4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5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마태복음 2:9~11

9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요즘 “백세인생”이라는 노래가 유행하고 있답니다. 25년, 오랜 무명시절을 지낸 이애란씨가 지난 2013년에 낸 음반 중에 있던 곡이 인터넷에 사진이랑 가사가 돌면서 소위 뜬 노래가 되었습니다. 강원도 홍천 두메산골이 고향인 그녀는 어릴 때부터 노래에 소질이 있었다고 하면서 ‘높은데 올라서 노래를 했었다’고 회상하였습니다.


그녀가 부른 노래가 왜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인기를 누리게 되었을까요? 어떤 이는 ‘~라고 전해라’ 라는 가사가 말하는 사람의 당당함을 나타내는 것이라 요즘 세태에 말 표현을 잘 못하는 이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리포트 빨리 내라고 하는 교수에게 학생들은 “재촉말라 전해라~” 하고, 회식에 참여하라는 상사의 말에는 “선약이 있어 못 간다고 전해라~”라고 한답니다. 마땅히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벙어린 냉가슴 앓듯 말 못하는 이들의 설움을 대신 노래했다는 평입니다.


오늘 이사야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이스라엘에게 빛이 있으니 그 빛을 발하라고 강권하고 있습니다. 네 빛은 정오에 빛 같은 밝은 빛이고, 그 빛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빛 때문에 결국 얼굴에 기쁜 빛을 내고 마음이 기쁘고 또한 화창한 날처럼 밝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빛은 세상을 비추는 광명입니다. 세상이 어두움에 있다는 것은 죄의 암흑에 갇혀있다는 뜻이요 빛이 비춘다는 것은 해방과 구속을 의미합니다. 그 해방자요 구원자가 바로 우리가 주님으로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이것이 우리에게 믿음의 고백이 됨을 알려줍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고 요한복음 기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밝히시고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고 하셨습니다. 또한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다(요12:49)”고 하셨습니다. 이에 우리는 늘 빛 되신 주님을 고백하며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정입니다. 막상 예수님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전해야 할지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예수님에 대하여 질문을 하여도 아는 바를 어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교회에서 예배와 봉사, 친교와 교육을 통해 예수님에 대하여 그분의 삶에 대하여 알고 있습니다. 이를 실생활에서 나타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신앙으로 자란다는 것에 대하여 잘 모를 수 있기에 생긴 일입니다. 너무 막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현실과 신앙이 괴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현실과 신앙의 격(隔)을 줄일 수 있을까요? 그것은 실천의지 willing to practice에 달려있습니다. 저는 설교자로서 이 간격을 줄일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몸소 실천하며 여러분과 함께 그것을 나누는 것으로 제 본분을 합니다. 여러분은 믿는 자로서 주께서 주신 말씀을 실천하려고 애쓰고 이를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면서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고 나눔으로서 그 간격을 줄일 수 있게 됩니다.


이 간격을 줄여 나가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는 무엇입니까?

아마도 그 첫 번째 이유는 우리의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주님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자신 있게 하나님을 안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주님에 대하여 알아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설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어느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 보통 만(10,000)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일만 시간의 법칙). 일주일에 한번 주일예배 한 시간 동안 성경을 펴서 본다는 사람이 만 시간을 채워서 하나님 말씀에 대하여 안다고 자부할 때까지 192년 4개월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일주일에 두 세 시간 말씀을 본다고 해도 평생~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에 대하 알 수가 없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 기간을 좀 줄여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대충 계산을 해보니까 1년 365일, 매일 1시간씩 성경을 가까이 하면 27년 5개월 정도 걸립니다. 이 정도면 괜찮나요?


그런데 시간이 없어서 바빠서 말씀을 읽지 못하고 가까이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저도 그런 핑계를 많이 대곤 했습니다. 하지만 들어보십시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신은 성경을 매일 아침마다 읽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대통령보다 더 바쁘게 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성경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늘어갈 것입니다. 중단하지 말고 성경을 읽고 공부합시다.


두 번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으로는 현실과 신앙의 간격을 줄이지 못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 다른 방해요소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두려움은 하나님 보다 어떤 다른 것에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원인규명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가치관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많은 관리들이 주를 믿었지만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였는데 그들은 자신이 출교(黜敎)당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하며 그들을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한 이라고 했습니다(요12:42-43). 그들의 가치관은 하나님에 우선하여 세상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태도 그리고 세계관에 따라 일을 결정하고 따르게 됩니다. 우리의 자신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어떤 가치관으로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라고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생각의 중심이어야 합니다. 무엇을 생각하든지 하나님을 먼저 떠올리는 습관, 태도,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연습해야함을 기억합시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분이 깨달은 바는 무엇입니까? 노랫말이지만 당당하게 자기의 말을 하는 것을 꿈꾸는 이 세대에게 뭐라고 주님을 전하면 좋을까요? “네가 믿는 예수가 누구냐고 묻거든 널 위해 세상에 오신 구원의 기쁜 빛이라고 전해라~”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시고 세상이 주는 불이익과 위협을 두려워 말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세계관과 가치관, 그리고 삶의 태도가 주 하나님을 최우선시하기를 바랍니다. 결국 우리에게 생명의 빛이 발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기도하고 주님께 나의 삶을 맡겨드리는 결단이 오늘 이시간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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