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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설교: 은혜 위에 은혜라



요한복음 1장 10~18절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John 1:10~18

10He was in the world, and though the world was made through him, the world did not recognize him. 11He came to that which was his own, but his own did not receive him. 12Yet to all who received him, to those who believed in his name,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 13children born not of natural descent, nor of human decision or a husband's will, but born of God. 14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We have seen his glory, the glory of the One and Only, who came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15John testifies concerning him. He cries out, saying, "This was he of whom I said, 'He who comes after me has surpassed me because he was before me.'" 16From the fullness of his grace we have all received one blessing after another. 17For the law was given through Moses; grace and truth came through Jesus Christ. 18No one has ever seen God, but God the One and Only, who is at the Father's side, has made him known.


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2016년 새해가 되어 첫 번째 주일에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올해는 뉴욕성화교회가 선교하는 교회, 성숙을 지향하는 교회, 돌봄이 살아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 함께 기도하며 전진합시다. 주님의 몸 된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말씀으로 성장하며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열매 맺으며 자라가야 합니다. 새해 첫 주일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과 은혜로 다시 시작하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제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는 아들의 장래를 위해 한국 전래 동화책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꽁지 닷발 주둥이 닷발, 반쪽이, 연이와 버들잎 소년, 콩쥐 팥쥐, 박(朴)씨 부인전 등 재미있는 동화를 읽고 또 읽으며 지냈던 기억이 납니다. 이야기 가운데 오래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설화라고 부르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사실 좀 끔찍한 이야기 일수도 있지만 오늘 말씀과 관련되어 한번 나누어 봅니다.


아주 오래 전에는 사람이 파를 아직 먹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는 종종 사람이 소로 보이곤 해서 잡아먹는 일이 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그 형제를 잡아먹게 되었는데 그 일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너무 후회가 되어 집을 떠나 정처 없이 나그네 길을 떠나고 세상 어느 곳에서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곳이 있으리라 여기며 오랫동안 나그네 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곳을 가보아도 여전히 사람끼리 잡아먹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마을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파를 먹고서 그런 일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그네는 그곳 사람들에게서 파를 심고 가꾸고 먹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파씨를 얻어가지고 자기 고향을 향하였습니다. 이걸 먹기만 하면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게 되리라는 생각만으로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만사를 제쳐두고 흙이 부드러운 밭에다 파씨를 뿌렸습니다. 그리고 보고 싶은 친구를 방문하였습니다. 하지만 친구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잡아먹어버렸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얼마 뒤에 그 마을 사람들은 이제까지 구경 못하던 푸른 풀을 보게 되었습니다. 향긋한 냄새가 나는 풀을 조금 맛보았습니다. 향기가 좋았습니다. 그 풀이 파인줄 아무도 몰랐습니다. 모두 그 향기 나는 풀을 즐겨 먹게 되었습니다. 그 풀을 먹은 사람은 사람을 사람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후로 모두들 파를 먹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처럼 소하고 사람하고 잘 못 보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인간은 오랫동안 먹고 사는 문제, 입고 사는 문제, 거주할 공간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노력과 연구 끝에 다양한 방법으로 그 문제들을 풀어갔습니다. 가축을 키우고 수렵을 하는 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없었지만, 농사를 짓고 가공품을 만들어서 식량을 보급하게 되면서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보다 많은 곡식을 얻기 위해 비료를 사용하고 물을 대기 위해 저수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기의 발전과 사용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많은 분야에서 놀라운 기술의 발전과 생산성 향상을 이루어 갔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유례없는 풍요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풍요롭게 산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모두 다 그런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중요한 문제 입니까? 심신의 평안과 안녕을 구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입니다. 평안을 찾는 일의 근원을 들여다 보면 결국 인간사에 나타나는 선악(善惡)에 대한 물음이 나오고, 그 물음은 결국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귀결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창조주의 신비한 흔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흔적은 영원을 사모하는 것이라고 성경을 기록되어 있고, 그것은 만물 속에 창조주를 발견할 수 있는 흔적입니다. 그 존재에 대한 질문은 신에 대한 질문입니다. 내 존재의 근원이 어디인가? 하는 문제는 인간의 고민가운데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물음에 대하여 많은 종교들은 대답을 하려고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이 문제를 정확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입니다.


학자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고상하고 심후한 철학은 불교에 다 집대성 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인간의 선악에 대하여 대책을 내놓고 있지 못합니다. 고행을 통해 부처가 되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누구나 가능한 일도 아니고 수없는 생의 반복을 끊는 해탈을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해탈은 열반이라고 부르는 과정을 통하는데 그것은 모든 생사의 윤회로부터 단절되고 해방되는 것입니다.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난 완전한 무(無)의 세계입니다. 그것은 수행을 하는 이들의 몫입니다. 일반인들은 그 수행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선하게 살면 다음 생에서 수행자가 되어서 부처가 될 가능성을 열어놓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나서 선악의 굴레에서 벗어나 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단명하게 보여줍니다. 세상에는 의인이 없다. 단 하나의 법을 어겨도 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도에 따라서 인간은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가야 합니다. 지옥에서 인간의 시간으로 최소 1조 6200억년이 지나야 다음 생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道)를 이루어 해탈을 하였다고 거기 뭔가 있다고 생각하면 오류입니다. 다만 남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정말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역동적이며 소망이 가득한 소식입니다. 어둡고 앞날이 캄캄한 인류에게 빛이 던져졌습니다. 그 빛은 세상을 위하여 조물주가 주신 것이었습니다. 존재의 근원이고 답입니다. 생명의 근원을 소유하게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구원은 하나님의 생명 가운데 우리가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가운데 주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기쁨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가령 내가 가지고 싶은 어떤 물건을 사거나 선물 받았을 때 우리는 기뻐하며 좋아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기쁨은 사라지고 맙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외적인 것으로 기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은 우리 속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쁨의 근원이신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안식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여러분이 복음이라는 좋은 소식을 듣고 믿으며 전하는 이유는 은혜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이 오셔서 복음을 주시고 구원의 길을 보여주시고 열어놓으셨는데 그것을 애써 부정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과학적이지도 않고 불가해하기 때문입니다. 논리적으로 귀결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길은 없고 그 길만이 인간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전해줍니다. 가장 쉽게 믿지 못할 방법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끊임없는 은혜를 부어주시고 계십니다.


파씨를 심었지만 잡혀 먹혔고, 누가 심었는지도 모른 채 그 은혜를 입어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눈을 가지게 된 이들을 생각하며 그 무명의 나그네가 베푼 은혜가 계속해서 사람에게 이어져 온 것임을 감사하면서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그렇게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 아들 독생자를 아낌없이 세상에 주셨지만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잡아 죽여 죄 없는 피를 흘렸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세상을 구원할 길이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렇게 길이 열려져서 믿고 가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멈추지 않고 계속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라는 말의 본 의미는 받은 은혜가 효력이 다할 때 즈음에 또 다른 은혜가 온다는 뜻입니다. “From the fullness of his grace we have all received one blessing after another.”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이 구원의 은혜는 주님께서 전적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은 우리에게 이 은혜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주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이 은혜 가운데 올 해도 잘 성장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존재의 근원으로부터 나오는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한 해 되시기 바랍니다. 한마디로 은혜가 넘치는 한해 되시길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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