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한나의 기도와 응답


사무엘상 1:9-18


9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10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12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14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15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6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17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8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분주한 맨해튼에 여러분이 볼 일이 있어서 나갔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42가 타임즈 스퀘어에서 사람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 공원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약간 인적이 드문 곳에서 공원의자에 남루한 옷을 입은 여자가 앉아서 뭐라고 중얼거리는지 입술은 움직이는데 소리는 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스쳐지나가면서 얼굴을 훔쳐보니 눈가에 눈물도 맺혀있고 상기된 얼굴빛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여인이 어떤 사정을 가지고 있으리라 여겨지십니까?


어떤 분은 이런 여인을 멀찌감치 떨어져 있을 때 알아보고 그 자리를 피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유는 뭔가 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이겠지요. 어떤 이는 술에 취하거나 약에 취해 있는 여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연인에게 차였는지 아님 무슨 슬픈 일을 당했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말 어떤 영문인지 궁금하시죠? 궁금하면 물어보라는 저의 당당한 표어를 기억하시는지요? 하하하. 어떻게 그녀에게 사연을 들을 수 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에 한 레위지파 사람가운데 이주해서 에브라임 산지에 거한 엘가나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한나라는 여인과 결혼을 했지만 아이가 없어 두 번째 부인을 통해 자식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한나를 사랑한 엘가나는 늘 한나를 마음에 두고 사랑의 표시를 하였습니다. 그에게 자녀보다 더 중요하고 사랑스런 한나가 안타까웠습니다. 한나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자신을 늘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때로 한나는 남편에게 자신에게 아이를 가지게 하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남편의 다른 부인인 브닌나는 그녀를 아이 못 낳는 여자라고 함부로 대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엔 자녀 없는 여인은 ‘왕따’의 대상이었습니다. 설움과 자책감에 오랜 동안 자식 없이 지난 한나는 어느 해 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 괴롭고 서운한 마음에 쉬지 못하고 자리에 앉아 통곡하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기도는 한이 없이 깊은 마음의 아픔 가운데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러한 고통을 많은 눈물을 흘리며 주님께 애원하였습니다. “만국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오죽 마음의 고생이 심했으면 자신이 낳을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서원을 했을까요? 자식이 없어 자식을 원하는 여인의 심정으로 가능한 일일까요?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리라 생각하고 깊이, 깊이 기도에 빠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을 주님께서는 들으셨고 그녀의 서원에 응답하셨습니다.


한나의 기도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해서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지만 왠지 오늘의 본문에서는 다른 몇 가지 내용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제 마음을 이끄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좀 더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먼저는 생각하게 하는 것은 한나의 기도하는 모습을 “왜 엘리 제사장은 술에 취한 것으로 보았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기도하는 일이 오래되면 때로 술에 취한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심정을 숨김없이 드러낸다는 점입니다. 술에 취해본적은 없지만, 술은 어렵고 힘든 고난에서 위로를 얻거나 최소한 잠시 잊으려 마신다고 합니다. 때로는 인간관계에서 상처 받거나 사회적으로 피해 입은 일로 발생하는 슬픔, 고통, 눌림, 억울함, 분노 등을 달래보려고 마시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함께 마시는 술친구에게 자기만의 갖가지 사정을 쏟아냅니다. 듣기 싫을 정도로 강조하고 되풀이해서 말합니다. 때로는 울면서 하소연하거나 혼자서 지칠 때까지 통곡하기도 합니다. 물론 좋은 일이 생겨 서로 축하하거나 동료들과의 교제를 위해서도 마시기도 하지만 그런 때도 속에 있는 생각들은 서로 털어놓습니다.


한나의 기도에도 그와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원수라고 불리는 브닌나의 공격에 상처를 입은 한나는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에 묻어둔 괴로운 감정을 토해내었습니다. 얼마나 쌓인 것이 많았으면 통곡하고 울며 기도했다고 성경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술에 취한 듯 입만 벙긋거리고 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마음을 토설하고 있었습니다. 술에 정말 취해 있었다면 그녀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방법이고 술이 깬 다음에는 후회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자신의 문제 가운데 있을 따름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쩌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기에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 보이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미 다 아시는 하나님께 무엇을 숨길 수 있겠습니까? 그는 늘 기도하면서 자신을 내어 보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심이나 불만 불신과 원망도 숨기지 않고 주님께 보입니다. 우리의 순결함은 주님 앞에 진정성을 보이는 것인데 그것은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께 갈급한 우리의 마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믿음으로서 그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믿음의 역사를 다 믿지 못하는 두려움을 가지고서 하나님을 대합니다. 숨기려고 하고 못 본 체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고 주님을 속이는 일이 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숨김없이 주님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이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십니다. 그런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살펴본 다른 의문은 기도응답에 대한 것입니다.

한나는 제사장 엘리의 말을 하나님의 응답으로 여기고 돌아가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다시는 낙심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브닌나의 괴롭힘이 있었을 테지만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바뀐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평안을 찾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다른 선지자나 사사들처럼 하나님이 직접 응답하시며 말씀해주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사장 엘리의 신통치 않은 축복과 중보에 그녀는 삶의 태도를 바꾸고 환경마저 이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나의 기도응답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해보았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과 참 친밀한 관계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잘 아는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알아서가 아닙니다. 헌신을 많이 해서도 아닙니다. 단지 그녀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현장에서 찾을 수 있는 시각, 지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에 응답을 어떻게 확인하고 있습니까? 때로는 표적을 구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주님의 뜻이 이렇다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혹은 주변의 환경이나 주위의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것을 잘 듣고 하나님의 뜻을 인정합니다. 주님께 진심으로 기도를 한 다음에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침묵하고 들려오는 소리나 다른 감각 혹은 환경의 변화나 주위의 사람들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분별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응답을 구하고 실행해 봅니다. 우리가 감정적으로 격해 있을 때는 일의 결정을 미루고 현재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님께서 임재하신 곳에는 평화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심상이 유도하는 것을 좇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두근거림이 아니라 영혼의 두근거림으로 주님의 뜻을 찾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원 의자에 있는 여인은 약에 취해 있거나 실연을 당했거나 무슨 억울한 일을 당해서 그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단지 자신의 마음을 하늘을 향해 열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단순하게 믿는 그녀의 모습에서 새삼스럽게 자신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서 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상대에게서 보이는 것은 나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로 향하여 높이 드십시다. 그리고 주님께 있는 그대로 보이고 숨기지 맙시다. 사람은 속을 수 있지만 주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기도를 한 후에는 주님의 음성을 기다립시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응답을 찾는 지혜를 얻읍시다.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계시며 항상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우리의 필요를 하시는 주님이시지만 기도를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의 돌보심과 함께 하심이 여러분과 저에게 항상 있기를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합니다.

Featured Posts
Recent Posts
Archive
Search By Tags
Follow Us
  • Facebook Basic Square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