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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의 의미



고린도전서 11장 23~26절

23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세계 성찬주일입니다. 물론 농촌선교주일이며 동시에 군선교주일이기도 합니다. 국제적으로 오늘은 모든 교회가 성찬을 하면서 성찬의 의미를 되새기는 주일입니다. 굳이 이런 날을 정해서 성찬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잘 안되지만 교회 교육적 차원에서 꼭 필요한 내용이기에 매년 지키고 의미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성찬은 주님과 제자들의 유월절 만찬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되면 가족과 근처 친족들이 모여서 함께 갓 잡은 양고기 구운 것과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인 무교병 그리고 쓴 나물을 나눕니다. 하지만 성찬은 우리 주님께서 제정하여 주신 예식입니다. 일반적인 유월절 식사와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유월절 자체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표상(表象)하는 것이지만 유월절 식사와 성찬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우선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 23절을 통해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이 예식, 곧 성찬식이 우리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바울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우리 주님 예수께서 제정(制定)하여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성찬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성례(聖禮)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성례에는 세례식과 성찬식이 있습니다. 각각은 그 의미가 다르지만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특별히 성찬은 주님이 제정하셨다는 점에서 귀하고 그 의미를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성찬의 의미에 대하여 본문 말씀을 통해 세 가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성찬은 주님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24절과 25절을 읽어봅시다.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예수님은 이것을 해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념하라는 말의 헬라어는 아남네시스(ἀνάμνησις) 라고 하고 이 단어는 깊이 기억하라는 의미입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단지 기억만하라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결단과 의지를 담아서 ‘기억하고 행하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즉 예수께서 그날 밤에 행하셨던 일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새기고 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함께 살던 제자들에게는 그 일이 가능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에도 제자들은 예수님을 생각하며 이 땅에 계셨던 주님이 어떻게 사셨는지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듣고 보고 느꼈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천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예수님을 만난 적도 없고 이야기 나눈 적도 없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겠습니까?


우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찢기시고 물과 피를 쏟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주님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성찬식에서 떡을 먹을 때 우릴 위해 몸을 버리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잔을 들 때 우리를 위해 물과 피를 흘리신 주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사랑과 은혜를 깊이 생각하고 그 행하신 일들을 따라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것이 주님을 기억하는 자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우리는 양처럼 그릇 행하며 각각 제 갈 길로 다니며 하나님을 떠난 죄의 종 된 상태였으나 우리를 위해 찔리시고 상하시고 징계를 받고 채찍에 쓰러지셨습니다. 예수께서 당하신 고난은 우리를 대신해서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었는지 누구 때문에 영생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기억하는 것. 이것이 성찬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입니다. 우리의 죄인 됨을 기억하고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 당하셨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잘 주님의 구속함의 은혜를 잊고 살아갑니다. 세상 속에서 휘말려 여기 저기 정함이 없이 사는 사람들은 더욱 그런 사실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속성을 잘 아시기에 이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주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둘째로, 주님의 성찬은 사명을 다짐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께서 알려주신 성찬을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성찬을 행하는 목적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우리는 선교(宣敎)에 대해 사명(使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그 복음은 우리를 위해 몸 찢기시고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가 대대(代代)로 할 일입니다. 그 복음의 내용은 늘 제가 말씀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릴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지만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사십일 후에 승천하셨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실 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은 참 소망이며 산 소망입니다.


그 참 소망의 주님은 우리에게 이 땅에서 할 일을 맡기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받은 자로서 행할 의무이자 주님의 부탁하심입니다.


두 아들에 대한 비유를 들으셨을 겁니다. 포도원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가 큰 아들을 불러서 포도원으로 보내며 일을 하라고 했더니 큰 아들은 네 하고 가지 않았습니다. 둘째 아들을 불러 포도원으로 일하러 보내려고 했더니 둘째는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습니다. 하지만 후에 뉘우치고 포도원에 가서 아버지가 시킨 일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첫째 아들처럼 행동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복음을 전하라고 불러서 교회를 맡겼더니 본분을 잊고서 분탕질을 일삼는 엘리제사장의 아들들 같지 않았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건강과 물질, 재능과 시간, 관계와 은혜를 베푸셨는데 우리는 대답만 하고 일하지 않는 큰 아들처럼 행동하였습니다. 불효막심하게도 아버지의 명에 거절하는 둘째 자식의 모습은 아니었습니까?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우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물론 결혼도 하고 가정도 꾸리고 교회도 지키고 직장도 발전시켜야 하겠지만 우리의 지상최대 사명은 주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것이 제일 행동 원리가 됩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다 버리시고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다 흘리신 주의 은혜,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 이것이 주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가 해야 할 사명입니다. 소망입니다. 소명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성찬을 통해 우리의 소명과 사명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확신과 함께 다짐의 시간이 되길 축복합니다. 이 예식 가운데 한 영혼의 소중함을 기억하면서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재림의 소망의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지도록 우리의 마음에 주님의 소망이 불타오르기를 축복합니다.


끝으로 성찬은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확인하는 의식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6-17절을 찾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아멘.


이 말씀은 믿는 사람들의 형제 자매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의 몸을 이루는 영성체의 신비(神秘)를 의미합니다. 즉 우리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교회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찬은 주님과 우리 사이에 머리와 몸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성례입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행위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하며 그것은 또한 함께 이 성례를 행하는 이들이 모두 한 몸을 이루는 것임을 기억하기 위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주님의 몸과 피를 머고 마시는 동일한 행위를 하는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한 부분으로서 공동체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이 되는 놀라운 신비 속에 거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가 공동체인 교회에 흐르고 찢겨진 그리스도의 살이 우리의 원동력이 되어서 주의 부르심에 따라 행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따라서 성찬은 주님과 우리를 하나로 만들고 그 안에서 한 사명에 대하여 일하도록 합니다. 그것은 성부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고 그 뜻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만민이 복음을 듣게 하는 것이며 그 일을 위해 우리를 부르심에 우리의 큰 사명과 소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성찬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에 참여하게 되고 영원한 생명에 동참하게 됩니다.


오늘 함께 나눈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찬은 첫째,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과 함께 나누신 것을 기억하고 반복하여 주님의 가르침과 삶을 기억하는 일이며 둘째, 우리에게 주신 복음 전파에 대한 사명을 확립시키는 일인 동시에 셋째, 주님과 우리가 하나인 것을 기억하게 하는 관계정립의 매개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일을 위해 우리는 성례를 정하신 주님의 의도에 맞게 우리의 마음을 주님을 향하게 하고 주님의 뜻을 받들어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주의 은혜가운데 거하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재능과 열정을 주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통해 주님과 하나 되는 성찬을 통해 체험하기를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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