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열매
창세기 2장 8~9, 15~17절
8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5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여러분, 오늘 Wilkens Fruit & Fir Farm에서 말씀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 두신 에덴동산에서 맡기신 일은 농사였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았느냐고요? 오늘 본문 15절에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두신 이유는 지으신 사람을 안으로 인도하시고 거기 평안하게 거하며 그 동산을 가꾸고 보존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단순히 사람을 들어서 데려다가 놓으시고 살도록 하신 것이 아닙니다. 전인격적으로 사람을 대하시면서 에덴동산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사람은 에덴동산 밖에서 지음을 받았고 사람을 위해 만드신 에덴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격적인 부분을 접하게 됩니다. 창조주이시지만 우리를 사랑하셔서 완전한 자유와 의지로서 행하도록 배려하셨습니다. 여기 좋은 곳이 있으니 와서 살라고 하신 것도 아니고 데려다 놓고 여기서 나가지 말고 살라고 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실 에덴동산의 크기나 위치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지요. 에덴동산, 기쁨과 즐거움의 동산인 그곳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 곳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으로 갈 수 있다는 점에서 구원으로의 초대에 응답하는 우리의 신앙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사람에게 거기서 나는 과실을 먹게 하셨습니다. 그 동산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셨습니다. 동산 바깥에서는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나무의 열매를 자유롭게 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거기엔 특별한 두 나무가 동산 중앙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두 나무를 동산 중앙에 나게 하셨고 그 가운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금하셨습니다.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이 두 나무는 각각 의지와 행위에 대하여 동일한 표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의지와 행위는 인간이 하나님께 부여받은 전적은 자유의지에 따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자유의지에는 분명한 책임이 존재합니다.
왜 하나님은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다고 하셨으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선악과로 부르는 나무를 만드신 이유는 사람의 제일된 목적과 다름없습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은 기본적으로 선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 사랑은 전적인 자유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켜 순종하기를 바라실 뿐입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최상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동산 중앙에 둔 이유였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언약을 지킴으로 영생을 상급으로 받을 수 있게 함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는 말씀 속에는 당연히 ‘먹지 않으면 살리라’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순종하면 ‘산다’는 의미에서의 ‘산다’는 것은 육체적 생명이 아니라 그보다는 한 차원 높은 의미의 생명, 즉 영원한 생명이 주어질 것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아담은 언약이 주어지던 당시에도 육체적인 생명을 가지고 있었음으로 단지 육체적 생명으로만 사는 것은 언약에 대한 상급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로지 생명이 주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의미하는 표상이었습니다. 우리 주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 생명나무 열매를 취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실재적으로 취하는 모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과 영원한 동행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이는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선택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 우리의 의지와 행위로 하나님의 뜻을 져버리는 자유를 택했습니다. 그 책임은 우리로 하여금 죄의 종으로 살게 하였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셔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실 때까지 우리는 구원받을 어떤 이름도 얻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길이 열려지고 누구든지 주를 영접하면 사함을 받고 영생을 보장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로 믿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조상 아담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믿음의 행위가 그 뒤를 따라야 합니다. 주님은 야고보서를 통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우리의 살아있는 믿음을 통해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아름다운 곳에서 생명의 풍성함을 보고 감사하면서 여러분의 믿음이 자라고 더욱 그 믿음을 굳세게 하며 존재로서 삶으로서 본을 보이는 한 사람 한 사람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