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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


야고보서 1:21~25

21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22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21Therefore, get rid of all moral filth and the evil that is so prevalent and humbly accept the word planted in you, which can save you. 22Do not merely listen to the word, and so deceive yourselves. Do what it says. 23Anyone who listens to the word but does not do what it says is like someone who looks at his face in a mirror 24and, after looking at himself, goes away and immediately forgets what he looks like. 25But whoever looks intently into the perfect law that gives freedom, and continues in it—not forgetting what they have heard, but doing it—they will be blessed in what they do. (NIV)


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우리들의 영원한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이 질문은 항상 중요합니다. 언제든지 누군가 여러분에게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라고 물어볼 때 진지하게 답을 해주어야 합니다. 물론 이렇게 점잖게 물어보는 분도 있지만 따지듯이 묻는 이도 있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여러분의 대답에 따라 그 한 영혼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질문에 대하여 나 스스로가 답을 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오늘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얻은 답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해보지 않아서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태초부터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말씀을 통해 세상이 창조되었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시고 또한 예수님이십니다. 그 말씀은 사람들의 빛이었지만 사람들은 그 빛을 거부하였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영접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말씀의 빛이 그를 생명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며 사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그것이 예배고 그것이 신앙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생각과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배우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우리가 배우고 듣고 본 바를 행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고 듣기만 해서 자신을 기만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나는 말씀을 읽고 보고 들었으니 이제 말씀이 나를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온전한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어느 집에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맏아들을 불러서 포도원에 일을 하라고 어떻게 해야 할지 이야기를 하고 보냈습니다. 맏아들은 ‘예’하고 아버지 앞에서 대답을 하고는 가지 않았습니다. 둘째를 불렀습니다. 아버지는 둘째에게 포도원 일에 대해 말해주고 일을 시켰습니다. 둘째는 아버지 앞에서 일하기 싫다고 거절하고 나가버렸습니다. 그런데 후회가 되어서 돌아가서 아버지가 시키신 포도원 일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아들이 아버지의 뜻에 따른 것입니까?


사실 두 아들은 모두 아버지에게 잘못 행하였습니다. 큰 아들은 거짓말하고 아버지를 무시한 잘못을 하였고 작은 아들도 아버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고 불순종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둘째는 회개하고 돌아와 주어진 일을 하였다는 점에서 점수를 후하게 받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고 돌아가 순종의 모습을 보인 것이 우리의 모습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에 다 죄의 종이었으나 이제 돌아와 아버지의 일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여전히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 보다는 이전 주인의 유혹과 간계에 빠져서 사는 것을 편하게 여깁니다. 그래서는 아니 되지요. 그것은 그릇된 것입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에 우리는 돌이켜 주님의 음성을 따라 사는 이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자신을 곧 잊어버리는 것도 문제입니다. 야고보서 저자는 비유로 이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김새를 보고 곧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보는 것처럼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고 우리가 죄인인 것과 잘못 살았음을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이런 자기반성과 자아성찰은 삶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기만 한다면 그리스도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종교도 얼마든지 이 차원에 이르고 자아성찰을 하면서 소위 ‘도’를 이루고 있습니다.


게다가 좋은 일을 하면서 자신을 감추는 일을 합니다. 자신의 죄인된 모습을 선한 일로 감추거나 고행으로 무마하려고 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세상 종교의 한계가 여기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도 그들과 같은 우를 범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말로만 회개할 뿐 곧 잊어버리고 죄를 용서해주시는 하나님께 불순종으로 답을 합니다. 우리 자신을 망각하는 것은 더 심한 지경에 처하게 되는 길입니다. 우리는 본 모습을 보고서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돌아서서 잊고 다시 제 길을 가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차원을 넘어서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필요한데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에게 주님께서 주신 것은 자유입니다. 그것은 불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온전한 자유입니다. 너무나 완벽한 자유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자유를 가지고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복지를 두고서 이스라엘 백성에서 좌우당간 택하라고 할 때처럼 자유를 주고 하나님을 택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한 바람이 있으십니다. 모든 문제와 순간에 무엇을 택하며 살아갈지 주님을 의지하라고, 주님의 음성을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자유의지로 모든 더러운 것과 악을 내어버리십시오. 죄와 악을 미워하십시오. 무릇 네게서 악한 것을 제하여 버리라고 하신 말씀을 들으십시오. 순간순간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나의 죄악 된 마음과 생각을 주님께 내어 맡기고(surrender) 나의 근본이 죄악 중에 있음을 인정(admit)하고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울 것을 다짐(determine)하십시오. 비록 그것이 슬픈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간 사람은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우리 맘속에 있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말씀을 온유한 마음으로 받으십시오. 그러면 말씀 속에서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 말씀을 따라 사십시오. 우리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행하도록 돕습니다. 주님의 생명의 말씀이 여기 있으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주님께 향하여 우리의 마음을 높이고 겸손하게 주님의 음성듣기를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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