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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떡이신 예수

생명의 떡이신 예수

요한복음 6장 41-51절

41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42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4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44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45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46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47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9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팔월 둘째 주일이고 광복절이 있는 주간이어서 조국 광복을 기념하는 주일이기도 합니다. 8월 15일은 1945년 해방일이기도 하지만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날이기도 합니다. 한반도는 광복 후 38선을 기준으로 남쪽은 미국이, 북쪽은 당시 소련이 군정을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3년 동안 한반도에 피가 흘렀습니다. 전쟁 이후 남북은 휴전상태에서 서로 반목하고 대치하면서 북한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도 대를 이어 독재정치로 점점 고립되어 가고 있으며, 남한은 민주공화정부가 들어섰고 경제발전을 이루어 세계에 그 위상을 높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북한 모두 하나님의 시각에서 볼 때 책망(責望) 받을 만한 모습으로 변질(變質) 되었습니다. 북한은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전기가 풍성하여 산업이 발달하였으나 3대 70년 동안 독재체제의 세습으로 피폐(疲弊)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고, 남한은 자유민주 체제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었지만 부작용으로 많은 사회문제를 낳았고, 무엇보다 교회가 타락하고 변질되어 회복 불능상태 직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복음과 함께 피를 흘려 한반도를 적셔 놀라운 선교의 역사가 시작되었지만 그 피가 채 마르기 전에 교회와 민족이 쇠약의 길로 내리닫게 되었습니다. 북한은 공산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회가 박해를 받아 지하로 숨어들었고, 남한은 경제적 발전의 현상 앞에 물질화 되고, 점차 신앙이 죽어가고, 1980년대를 고비로 그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생명력을 상실한 한국의 교회는 미국교회로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것을 미국 안의 한인이민교회가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 무척 안타까울 뿐입니다.

여기 뉴욕지역에서 교회는 그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수천 명되는 대형교회 네 곳 중에 세 곳이 분쟁으로 시달리고 있으며, 그보다 적게 모이지만 여러 가지 갈등으로 인해서 교회가 풍비박산이 난 곳이 한 둘이 아닙니다. 이러한 영적인 저항과 악영향이 미주한인 교계와 성도들의 영적인 성장을 저해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은 가슴 아프지만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지금 죽어가는 교회에 새 생명이 넘치는 부활의 전기(轉機)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생명의 떡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말씀을 통해 이 일이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의 가정사를 소상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안다고 자부했지만 진정 그가 누구였는지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의 형제자매들과 부모를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늘에서 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비취는 빛을 보았지만 빛을 빛으로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이라고 불렸으나 실상은 이방인과 같았습니다. 그것은 태양이 눈앞에서 번쩍거리고 있어도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눈먼 사람과 같았습니다. 저들에게 행하신 많은 이적들을 통해서 충분히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 수 있었으나 그들은 그것을 믿지 못하는 영적인 어두움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들이 아는 것은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을 바로 알았다면 그들은 예수님께 부복(俯伏)하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며 믿었을 것입니다. 참 아는 것은 믿음으로 이어져 구원받을 신앙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들의 믿음을 헛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예수님에 대하여 우리의 증언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으며 그분을 어떤 분으로 알고 계십니까? 그저 역사상 위대한 일을 행한 성인으로 알고 있습니까? 만인을 위해 십자가의 도를 전하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까? 그가 보여준 사랑의 행위와 삶을 통해 신망 받을 만한 분이라고 믿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예수님을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고 참 하나님이십니다. 성인도 아니고 본을 보인 한 인간으로만 여기지 마십시오. 사랑이 넘쳐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은 사랑의 화신이라고 대충 넘겨짚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에게 구세주가 되시려 이 땅에 오셨고 우릴 위해 사시다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다시 오시는 분임을 알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어떤 삶을 사셨든지 우리는 그 분의 삶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명확하게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국에 제 사촌 누이의 매형이 여러분 계시는데 그 중 한분이 시흥동에 살고 계십니다. 그분은 젊었을 때 해병대를 통해 월남전에 참전한 용사였고 누이를 만나 결혼하여 살았지만 주사가 심해 결혼 생활이 위태하였습니다. 그런데 누이는 독실한 성도로 남편을 최고로 대접하면서 믿음의 박해도 견디며 살았습니다. 술 담배를 즐기던 매형은 자신이 가진 최고의 무기인 육체에 질병이 있게 되자 신앙에 눈을 돌렸습니다. 누이를 따라 교회출석을 하게 되고 매주 예배를 빠짐없이 다녔지만 주님보다는 다른 주님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뭔가 증거를 보여 달라고 기도를 하게 된 매형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즐기던 술 담배가 갑자기 싫어지게 되고 맛이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 일을 통해 그 매형은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 구나,’ ‘정말 나와 함께 하시는 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 그의 삶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을 위해 보내주셨고 그 사랑으로 자기가 구원받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제 머리카락이 백발이 다 되어 육신을 쇠하여 가지만 그 신앙은 점점 굳건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떤 주님을 만나셨습니까? 그 주님을 어찌 알고 계십니까? 질문에 신중하게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주님을 영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상황에 있는 이들에게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풀 수도 없고 철학적으로 이해할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서로 수군거리며 아무리 생각을 모아 봐도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다만 보이지 않는 주님을 영접하고 믿기로 작정해보시면 다른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말씀에 기록된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그를 세상에 보내시고 하늘 아버지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배우고, 새 계명을 통해 주신 율법의 완성을 실천해 나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전의 우리의 삶이 어떤 것이었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을 향하여 새로운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예수님의 나의 주님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영접입니다. 이제 새로운 나는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하며 사는 존재로 인정됩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에게는 영생이 보장되고 그 보장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게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팔복의 말씀이 천국의 삶의 원형임을 알게 됩니다. 마음을 비우고 가난하게 되고, 애통하는 심령, 온유하고, 의에 주리며,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청결한 마음, 화평하게 하는 이들이 되기를 박해를 받아도 계속하게 됩니다. 이런 이들이 천국의 소유자들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요 승리자들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곧 생명력을 얻게 된 자들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 근원은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있다고 말씀합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사람들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근본이 바꿔지는 경험을 한 것입니다. 우리의 소속이 바뀌고 입장이 달라지고 태도와 가치관 그리고 삶의 모든 근원이 달라집니다. 이러한 경험은 하나님이 자녀로 인정받으며, 그 사람을 성도라고 부르고, 그것을 나누는 삶을 제자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모든 성도는 제자의 삶을 추구하며, 제자는 그리스도의 복음전파의 명령에 따라 사는 이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성도와 제자는 믿는 이들의 다른 모습입니다. 성도는 제자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존귀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주어졌으며 그 이름으로 우리는 불리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이들은 그리스도를 취(取)한 사람이 됩니다. 이 사람은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그와 같이 영생하도록 살게 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이 가진 놀라운 말씀 즉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더 이상 실존하는 것으로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눈앞에서 벌어진 이적을 깨닫지 못한 까닭이었습니다. 그저 배고픔에 눈먼 욕심에 예수님을 선지자로 혹은 정치적 구원자로만 여겼기에 참다운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애초에 그들은 빛에 대하여 알고 싶지도 않았고 그런 존재에 대하여 무시하였습니다. 눈이 있었지만 가려졌고 귀가 있었지만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분명하게 선포하십니다. ‘내가 그 빛이요, 생명의 떡이며 음료다. 나로 말미암지 않으면 아버지께로 갈자가 없다.’

이제 예수님을 취하십시오. 주님이 주신 살과 피를 나누며 그리스도와 함께 사십시오. 주님의 몸과 피를 나누어 먹고 마신다는 의미를 되새겨봅시다. 우리는 믿는다는 신앙을 관념적인 용어로 사용하는 때가 많습니다. 신앙은 이론적이고 사변적인 말이 아닙니다. 실재적(實在的)이고 실제(實際)하는 것입니다. 먹는 것을 통해 우리는 주린 것을 멈추게 되고 마시는 것을 통해 갈증을 해소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단지 알고 보며 만나는 것으로만 우리의 신앙이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헛것과 다름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우리를 살게 하고 영생에 있도록 합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일을 계속하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계속 경험해야 합니다. 일주일전 먹은 음식이 지금 내게 소용이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하나님의 음식과 음료를 취해야 합니다. 그 안에서 힘을 얻으며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사신 것을 통해 우리도 살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해 지금 여기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우리도 역시 주님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십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도 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고후4:14)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11)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와 함께 다시 사는 영생을 얻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약속의 말씀을 따라 믿음의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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