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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성도의 삶에 도전장을 내밀다 Enemy defies saints to do evil!

(달라스 임마누엘 한인연합감리교회 주일 설교)




로마서 6장 12~14절

12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Romans 6:12~14

12Therefore do not let sin reign in your mortal body so that you obey its evil desires. 13Do not offer the parts of your body to sin, as instruments of wickedness, but rather offer yourselves to God, as those who have been brought from death to life; and offer the parts of your body to him as instruments of righteousness. 14For sin shall not be your master, because you are not under law, but under grace.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 가운데 처음부터 인상 깊게 보기 시작한 것이 있습니다. <<리얼 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지금은 시즌 2가 진행 중이지요. 요즘은 시청을 잘 하지 못하지만 여전히 관심이 많습니다. 군대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저는 별로 이야기 할 것이 없습니다. 저는 단기사병으로 복무하고 소집이 해제했기 때문입니다. 네, 18개월 복무하고 군 생활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저는 열심히 복무하였고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 저보다 오래 복무하신 담임 목사님도 계시지만 복무를 한 한국 남자들은 두세 명만 모이면 자기가 경험한 군대 이야기를 나눕니다. 정도는 있지만 모두 나름대로 힘들고 어려운 군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군대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많은 이야기는 심하게 고생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힘든 일을 겪은 후에 우리는 왜 그 이야기를 두고두고 이야기 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추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군대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요즘 우리가 재미있게 보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시 군대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짜 사나이”라는 제목의 예능 프로그램을 보신 분은 무엇을 느끼고 보시는지요?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시면서 시청하고 계셨나요?


그런데 저는 ‘성도로서’ 그저 한국의 군대문화나 특별한 생활을 엿본다거나, 방송인들의 재-입대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거나 혹은 옛 추억에 빠져 ‘나도 그랬는데’ 하며 기분을 좋게 ‘충전’하는 시간으로 여긴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성도로서 조금은 달리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뭐냐고요? 오늘 설교를 한번 들어보시고 생각해도 늦지 않으니 지금은 제 설교를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 잠간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 경로를 통해 ‘성화 sanctification’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성화는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온전하게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향한 우리의 삶을 성화의 삶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로 거룩한 삶을 살라고 하신 데 있습니다(베드로후서1:15). 때문에 바울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군인-병사 같은 존재입니다(디모데후서 2:3-4).


그렇습니다. 우리는 가수 헨리의 말을 빌리면 ‘군대-맨(military man)’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현직 군인이라는 뜻입니다. 그것도 평시가 아닌 전시, 전쟁 중인 상태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리가 전쟁터입니다. 분위기 조성을 하자고 하는 설교가 아닙니다. 실제 영적인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에게 원수인 사탄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도전해오고 있으며 위협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가 느끼고 있든지 아니든지 말입니다. 설교가 뭐 이렇게 살벌하냐고요? ^^;


원수의 도전장.

우선,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원수가 내민 도전장의 내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도전장은 우리의 심중을 꿰뚫어 보는 그의 ‘매서운 눈초리’입니다. 원수는 우리를 과녁(target)을 삼고 우리의 심중을 노립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죄의 세 가지 특성을 이용하여 우리를 그와 타협하게 할뿐 아니라 죄의 종, 아니 죄의 노예로 삼고자 합니다. 그 죄의 특성은 반복성, 성장성, 전염성입니다. 죄를 짓는 데에는 반복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계속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 죄는 점점 커졌습니다. 마침내 타인의 손에 맡겨진 차도살인에 이르기까지 퍼졌습니다. 원수는 우리의 연약한 특성을 너무나 잘 이용합니다. 여러분의 사례는 무엇입니까? 엄청난 흉계로 양치기를 속인 늑대이야기를 아시지요? 죄는 그런 계략을 너무나 잘 이용합니다. 여러분은 원수의 어떤 흉계를 알고 계십니까?


두 번째로 우리의 원수는 우리의 오감을 속이는 위장전술의 대가입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가운데 하나는 우리에게 철천지원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원수와의 전쟁에서 우리는 이미 승리하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항하는 대적의 잔존세력이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이런 경고의 말씀을 우리는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슬에 목이 매여 있는 사자처럼 가까이 하지 않으면 전혀 두려울 것이 없는 원수는 우리를 그 겉모습으로 속이고 있습니다. 두려워 말고 당당히 맞서 싸우십시오! 우리에게는 이미 승리하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함께 함을 기억하십시오. 원수는 우리의 기억을 자꾸 현재의 문제 상황으로 집중하게 하고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을 잊도록 만듭니다. 원수를 대적하십시오. 그는 이미 패하고 도망중입니다. 우리 대장되신 주님께 맡기십시오. 있는 그대로를 아뢰십시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부를 때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십니다. 원수는 주님의 이름만 들어도 쫓겨 갑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세 번째는 우리의 원수인 사탄은 우리의 육체의 욕구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욕심-욕구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 몸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이런 의식주에 대한 근심과 걱정 그리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욕심이 자라나게 합니다. 그리고는 그런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 것을 강요합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게 되면 성령이 하시는 일을 할 수 없고 알 수도 없게 됩니다(갈5:16-17). 결국 영적인 생활은 사라지고 마귀의 종노릇을 하게 됩니다. 마귀는 그것을 노리고 있습니다. 아십시오. 우리의 주군(主君)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수는 계속 우리를 대적하고 도전합니다. 하지만 담대하십시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주실 것입니다.


성도는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은 자들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죄가 성도 가운데 역사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논리적으로 모순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가지 다 실재적이고 현실적인 진술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14절에서 바울은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라고 언급함으로써 죄에 대한 성도의 죽음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죄에 대해 성도가 죽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분은 이제 죄의 법 아래에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정리해 봅니다. 성도는 의인이고 거룩한 자의 신분을 가지고 있지만 “죽을 몸”을 지닌 현재(現在)는 아직 죄와 투쟁하는 신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죽음에 대하여 승리하신 주님을 따라 죽음에 대해 구속함을 받은 몸입니다. 때문에 그 죄악의 구속력이 우리를 해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적에 기만전술에 대항하여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 예수님에게도 자신에게 엎드려 경배하라는 조건을 내 걸었습니다. 우리에게 사단은 자신의 종으로서 육체의 정욕대로, 안목의 정욕대로, 이생의 자랑 안에서 살라고 강요하고 유혹하고 회유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그를 꾸짖고 엄히 말씀하셔서 물리치신 것처럼 우리는 죄악의 곁에 가지 말고 자리를 피하며 단호히 죄의 유혹을 거부해야 합니다. 영적인 훈련을 달게 받으십시오. 승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짜릿한 감정이 아닙니다. 참 기쁨이 생기게 됩니다.


바울의 권면

군인은 적대 대항하여 싸워 이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군인은 훈련을 합니다. 비록 전시상황이 아니어도 준비를 해야 하기에 훈련을 받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은 조금 다릅니다. 우리는 전쟁터에 있습니다. 비록 이긴 싸움이지만 적들은 우리를 놓아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먼저 그리스도의 병사로서 삶을 산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 자신을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드리라는 권면은 과연 무슨 뜻일까요?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군인으로 비유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병사에게 필요한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였고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의로서 무기를 삼으라고 권면하였습니다.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고 정신을 차리자고 말합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3~17)”고 하였습니다. 일일이 모든 것을 다 설명하지 않아도 그리스도를 위한 군인으로서 우리는 용기 있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한 우리의 결단은 과감하게 원수를 대적하고 승리의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진짜 그리스도의 용사

우리는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로 부름을 받았고 훈련과 함께 전쟁터에 있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 최선은 다름 아니라 우리의 삶에 도전장을 내민 원수의 유혹을 물리치고,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순복하며, 죄에 대하여 단호한 자세를 유지하는 삶을 살면서, 그리스도의 완전을 향하여 계속 전진하는 삶입니다. 진짜 사나이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고 지도에 따르며 힘써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자 하는 모습입니다. 세상의 군인도 그런 모습으로서 참 용사를 길러내는데 하물며 영적인 전쟁에 임한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로서 주님께 순복하며 성실함으로 자라나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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