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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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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장 5~11절

5이것을 우리에게 마련하시고 우리에게 보증으로 성령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6그러므로 우리는 늘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가 몸을 입고 사는 동안에는 주님으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7사실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지, 보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8우리는 마음이 든든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살기를 더 원합니다. 9그러므로 우리가 몸을 입고 있든지 몸을 벗어 버리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10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각 사람은 몸을 입고 사는 동안, 행한 선한 일이나 악한 일이나 자기가 행한 행위대로 거기에 알맞는 보응을 받게 될 것입니다. 11​우리는 주님이 두려운 분이시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도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셨으면 하는 것입니다.[쉬운성경]

2 Corinthians 5:5~11

5Now it is God who has made us for this very purpose and has given us the Spirit as a deposit, guaranteeing what is to come. 6Therefore we are always confident and know that as long as we are at home in the body we are away from the Lord. 7We live by faith, not by sight. 8We are confident, I say, and would prefer to be away from the body and at home with the Lord. 9So we make it our goal to please him, whether we are at home in the body or away from it. 10For we must all appear before the judgment seat of Christ, that each one may receive what is due him for the things done while in the body, whether good or bad. 11Since, then, we know what it is to fear the Lord, we try to persuade men. What we are is plain to God, and I hope it is also plain to your conscience.[NIV]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은 어떤 경험(經驗)으로 인해 그것을 평생 잊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경험을 하셨습니까? 그리고 그 경험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어떤 이는 기쁜 일을, 혹은 슬프거나 화나났거나 즐거웠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경험은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침체를 부르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지나온 삶은 추억이 되고 다가올 삶은 소망이 되어 현재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렇게 삶이 만만하지는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우리 자신들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삶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더욱 풍성함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그 경험은 가장 잔인한 선생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고 가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조금 다를 뿐입니다. 그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우리에게 이야기 하나를 남겨주고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그 경험이 어떠했는지를 통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도 바울에 대해 들어보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주변에는 그의 이름을 빌려 쓴 이들이 만다는 것을 압니다. 여기 저기 바울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폴 히버트 박사는 역사신학자이며, 폴 해밀턴은 목사님이시죠, 폴 고(Paul Koh)는 가까이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 아들이기도 하고요... 많은 남자 아이들 이름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떻게 그의 이름이 이렇게 오래도록 그리고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되었을까요?

그는 아시는 대로 기독교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생각되는 사람입니다. 복음에 대해, 교회에 대해 서신서에 나타난 그의 신학적인 사고는 이후 기독교 신학의 근간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로서 복음을 전한 유명한 사람이지요. 하지만 스스로를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 실제로 바울은 죄 없는 이를 불법으로 처형하는 자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예수 믿는 이들을 잡아다 예루살렘으로 끌고 가기 위해 당당하게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서 다메섹을 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된 것인가요?

그가 그 길을 가고 있었을 때 해같이 빛나는 빛이 그를 비추었고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은 지금까지의 삶에서 돌아서게 되었습니다. 박해자가 전도자가 되었고 의인으로 율법사로 살았던 사람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순회 선교사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이 사도행전에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는 처음에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그는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를 마케도니아로 보내셨습니다. 복음은 그를 통해 지중해를 거쳐 유럽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그가 가진 하나의 소망은 속히 주님을 대면하여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러 가지 여건과 환경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는 주의 복음을 힘 있게 전했습니다. 매도 맞아보고 채찍도 맞았습니다. 강도의 위협도 있었고 동족의 위협도 견디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가진 소원을 이루는 데에는 걸림돌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의 고백은 자신이 지금 죽어서 주님께 가는 것이 자신에게 더 좋은 일이지만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자신의 삶의 소원이었기에 복음을 더욱 열심히 전했습니다.

저는 바울의 고백을 통해 소름 돋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대체 무엇이 그를 이토록 복음에 열심 있게 하였을까? 목숨을 잃는 순간에도 천사의 얼굴로 숨진 스데반이었을까? 그에게 예수를 소개한 아나니아였을까? 교회에 그를 천거하고 함께 동행한 권위자 바나바였을까? 아니면 그를 만나준 사도 베드로나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인 야고보의 영향이었을까? 모두가 그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쳤겠지만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오직 한 사람, 살아계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다른 아무라도 주님을 대신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그 주님만 바라보는 ‘주바라기’였습니다.

사실 우리는 주님을 만나서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것을 소망합니다. 언제 주님 다시 오실지 모르지만 그 때를 기다리고, 기다리고, 바라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에 대해서는 우리는 ‘모르쇠’로 일관하려고 합니다. 내가 편하지 않아서 내가 좋아하지 않아서 내 맘에 들지 않아서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을 거절합니다.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거부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사랑의 주님이시지만 또한 심판하실 주님이시라는 것을. 바울은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두려운 분이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고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기를 소원하였습니다. 그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한 가지 소원을 나누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저와 여러분들이 가진 경험이 무엇이었든지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과정이었음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앞으로 하나님의 뜻이 온전하게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그 음성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만난 하나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지금 죽어서 주님 뵙는 것도 좋지만 기뻐하실 일을 하다가 주님 만나는 것도 좋은 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생각하고 주님만 따르는 주바라기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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