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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victory

요한1서 5:1~8

1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2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4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6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8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2년 전 에드워즈는 어느 작은 타운에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 청빙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는 교회 안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교회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수락하였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 믿음과는 반대로 문제는 점점 악화되었다. 교회예배에 사용하는 음악 때문에, 한 교인의 부도덕한 행동 때문에, 파트타임 중고등부 목사 임용 때문에, 설교에 유머가 없고 너무 길다는 성토가 잇달았다. 어느 날 교회 대표들은 에드워즈목사의 사무실에 찾아와 목사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으니 떠나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이 참고 견디면서 기도하고 말씀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대하면 문제가 해결되리라 여겼고 탈진상태에 이를 만큼 열심히 교회를 위해 일을 했건만 교인들의 지원을 얻어낼 수 없었다. 그는 형편없는 패배자가 된 심정이었다.(“영적 리더십” 중에서 요약)

이런 사례가 우리 주변에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곰곰이 생각하면서 오늘 말씀을 들어봅시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모습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마치 지구에 엄청난 공기와 물이 있어서 중요성을 잊어버리는 것처럼 우리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지 잊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생명에게 물과 공기보다 중요한 유지 수단은 없습니다. 물은 사흘 정도 공급받지 못하면 죽음에 이를 수 있고 공기는 공급 중단 삼사 분 정도면 치명적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귀함은 천하보다 더한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은 흔히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치를 단적으로 표현한 귀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 가치를 알고 누리며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놀라운 존재로 인정하십니까? 아니면 형편없이 느끼며 살고 있습니까?


자신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든지 그것은 자유이지만 귀한 여러분은 스스로를 진정 가치 있고 귀하다고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소위 자존감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살면서 어려운 일을 만나면서 사는 것은 인생의 파도를 넘는 것과 같습니다. 때로 이런 계속되는 어려움에 지칠 수도 있겠지만 힘을 내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당당하게 살아라! 너희에게는 세상을 이길 ○○이 있다.” 여기서 ○○은 무엇일까요?


요한 서신을 쓴 장로 요한의 관심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랑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정의내린 그는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어떻게 있는지 설명하면서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 이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다고 선언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는 사람들은 그와 같이 승리자가 되어 세상을 이기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깁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입니다. 따라서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 사랑의 증표입니다.


세상을 이긴다고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전에 세상의 종이 되어서 하나님과 떨어져 멸망의 자식으로서 살았다는 점을 기억하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세상을 이길 만한 능력도 없고 저항도 불가하였습니다. 세상이 시키는 대로 우리는 죄를 짓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노예처럼 이리저리 구르며, 우리 인생이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인 줄 알고 지냈습니다.


예를 들면, 히브리민족이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탈출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그들 눈앞에서 나타났지만 불순종과 불신앙이 반복되는 것을 성경을 통해 봅니다. 그들은 우리가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서 노예생활 하는 것이 낫겠다고 말합니다. 기껏 놀라운 기적으로 이집트를 흔들고 홍해를 갈라서 건너게 했더니 사흘 만에 하는 소리가 예전으로 돌려달라는 것. 우리가 보면 한심해보이지요?


하지만 그런 모습을 원치 않으신 하나님은 원대한 구원계획 가운데 한 사람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 후손에서 구세주가 나게 하셨습니다. 갑자기 변화를 일으켜서 하실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한 민족을 택하시고 섭리 가운데 역사를 주관하셔서 때가 이를 때까지 기다리신 하나님은 마침내 팔레스타인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그렇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없이 죄의 유혹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통치가 없는 세상. 그런 세상을 의미합니다. 이런 세상에 대해 우리가 이긴다고 하는 것은 노예로써 사는 것을 그만두고 자유의지로서 하나님을 택하고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을 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지 여러분은 잘 모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노예 해방 되었다고 했는데 다시 종이 되라고 하니 이상하게 여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에 인간에게는 무한한 자유가 보장되었습니다.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 자유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어진 것인데 인간이 배은망덕하여 하나님을 져버린 것입니다. 주신 자유를 하나님을 떠나 사는 것을 선택하는데 사용했습니다. 그 때문에 자유를 빼앗겨버리게 되었습니다. 죄의 종이 되고 세상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원수의 말에 속아서 살았습니다. 썩어질 욕심을 따라 죄를 지었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자유를 되찾아 올 방법이 인간에게는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만이 이 일을 해결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계획하시고 준비하시고 실행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 자마다 자유를 주시고 친히 하나님의 동역자로 종으로 자녀로 불러주셨습니다. 그 은혜가 놀랍지 않습니까? 할렐루야!


우리는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소중하고 귀하고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처음에 들려드린 이야기처럼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되찾아주시고 자녀 삼아주셔서 그 사랑을 보여주신 주님은 왜 이 세상에 우리를 두시고 계시는 것일까요? ‘죄의 종으로 살지 말로 의의 종으로서 살아라’ 하는 말씀을 주신 이유가 뭘까요? 그냥 하나님 나라에 옮겨 주시면 좋을 텐데...


주님은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세상에 오시겠다고 하신 신실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날에 모든 것이 마쳐질 것입니다.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지고 하나님 나라가 회복되고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사는 새 창조(new creation)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 일에 먼저 믿는 사람들 곧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신(messenger)이 되어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선포되고 이루어진 자유를 세상의 사람들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을 전도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진리의 말씀을 증언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은 증언하는 사람(witness)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이러한 고백을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도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은 그것이 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내릴 것입니다. 만일 내가 자원해서 복음을 전한다면 당연히 보수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면, 이것은 내게 맡기신 직무를 다하는 것일 뿐입니다(고전9:16-17).”


우리가 이일에 부름을 받았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전도를 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먼저 우리는 주님께 기도하며 시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해야 합니다. 실천하며 세상에 승리하는 모두가 되기를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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