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는 선한 목자
요한복음 10장 11~18절
1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John 10:11~18
11"I am the good shepherd. The good shepherd lays down his life for the sheep. 12The hired hand is not the shepherd who owns the sheep. So when he sees the wolf coming, he abandons the sheep and runs away. Then the wolf attacks the flock and scatters it. 13The man runs away because he is a hired hand and cares nothing for the sheep. 14"I am the good shepherd; I know my sheep and my sheep know me-- 15just as the Father knows me and I know the Father--and I lay down my life for the sheep. 16I have other sheep that are not of this sheep pen. I must bring them also. They too will listen to my voice, and there shall be one flock and one shepherd. 17The reason my Father loves me is that I lay down my life--only to take it up again. 18No one takes it from me, but I lay it down of my own accord. I have authority to lay it down and authority to take it up again. This command I received from my Father.“
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옛날 팔레스타인의 여러 곳에서 양과 염소를 치는 목자의 일은 매우 고된 직업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양들을 돌보느라 한낮의 불볕더위와 밤의 매서운 추위와 힘겹게 싸워야 했습니다. 들판이라는 지리적 특수성으로 도적들과 야생짐승의 공격에 항상 긴장을 늦추지 못하였습니다. 때문에 잠을 설쳐가며 밤을 지새워야 했습니다. 하늘의 별들을 이야기 삼아 지내기도 하고 골짜기 아래 맑은 물이 있는 곳은 낙원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군에 속해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목자는 이스라엘을 위하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상징이었으며, 예수님 스스로도 자신을 사람들의 목자라고 불리기를 마지않았습니다. 주는 나의 목자라는 시편 23편의 유명한 구절은 하나님을 목자라고 부르고 있고 백성의 양육자이며 인도자와 보호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만큼 목자라는 직업에 깊은 신뢰가 담겨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조상으로 여기던 아브라함이 목자였고 그 자손들도 대대로 목자로서 살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직업에 비해 목자라는 직업은 대단히 오래된 것이었고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왜 하필 많은 직업군이 있고 다른 비유의 대상도 있었을 텐데 자신을 목자에 비유 하셨을까요? 그리고 왜 ‘선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셨을까요? 이런 질문들을 생각하면서 말씀을 상고해 보았습니다.
선하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인간은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을뿐더러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합니다. 성선설이나 성악설이 모두 맞는 이야기라고 한다면 의아할 수도 있지만 신학적으로도 그것은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초대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이란 선의 부재가 아니라 결여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은 선한 하나님의 이미지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의지를 따라 죄를 범한 인간은 악함도 존재하는 본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에는 죄를 지을 수 있는 자유도, 죄를 짓지 않을 자유도 있습니다. 물론 선을 행할 자유도 선을 행하지 않을 자유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정의와 관계되어서 선은 의로운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른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으로서, 피조물로서, 피조세계를 대표하는 존재로서 바른 일을 하는 것이 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선을 행동할 것을 명하십니다. 선하신 하나님을 따라 선을 행하는 인간의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여기십니다. 그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고 미가 선지자는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선하다는 것은 바른 일 곧 인간답게 바른 일을 하는 것이며 사랑으로 대하고 겸손함으로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목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맡겨진 가축을 건강하게 잘 키워서 생산력을 증대시키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이들입니다. 소극적으로 목자는 돌보는 양들이 필요로 하는 먹이를 찾아다니며 마실 물이 있는 곳에 머물며 양들의 필요를 해결해주는 직업인입니다. 목자는 그 지역을 잘 알고 있어야 하며 키우는 양들의 속성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언제 어느 때에 양들을 몰아야 하고 어디에 어떤 풀들이 자라고 위험이 있는지 등을 알아야 제대로 양을 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선한 목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따라서 선한 목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소나 양 혹은 염소들을 사랑하여 잘 양육하고 보호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선한 목자는 자신의 양들의 이름을 다 알고 양들도 목자의 음성을 알아 그 목자만 따르게 됩니다. 목자는 자신이 돌보는 양들의 필요를 알고 있으며 그 요구를 채워 배부르게 하고 성장하게 하고 생산하게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양들은 건강해지고 양떼는 풍성하게 됩니다. 그 바탕은 사랑이며 결과는 자기희생입니다.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고 양들을 위해 바칠 수 있는 목자가 선한 목자입니다. 그 희생적인 목자의 선함에 보상이 반드시 있습니다.
여러분은 늑대와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를 아시는지요?
늑대가 오랫동안 양떼 주변을 배회했지만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양치기는 의심을 가지고 한동안에는 항상 그를 공공연한 적으로 감시를 하였죠. 그러나 늑대가 양떼를 괴롭히고자 하는 최소한의 시도도 없이 오랫동안 그들을 따라다니기를 계속하자 양치기는 그를 적보다는 친구로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도시로 갈 일이 생긴 양치기가 양떼를 늑대에게 맡기게 됩니다. (허걱!)
늑대가 기회를 보자마자 즉시 양들을 닥치는 대로 양떼를 습격하고 물고 흔들어댔습니다. 돌아온 양치기가 양떼들이 죽어있는 것을 보고 울부짖었습니다. “어리석구나! 양들을 늑대에게 맡겼으니 이런 일을 당해도 마땅하지.”
이런 어리석은 목자가 있을까요? 네, 안타깝게도 있습니다. 누구냐고요? 많은 목자들이 이런 어리석은 일들을 맡은 양들에게 행하고 있습니다. 맡은 이들은 충성스럽게 맡겨진 양들을 사랑으로 돌봐야 마땅하지만 양을 돈벌이 대상으로 여깁니다. 이놈을 팔아서 집을 수리하고 저놈은 팔아서 장사밑천 삼아야하고 ······. 더 말하지 맙시다.
선한 목자 예수
정말 선한 목자인 예수님은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 놓았습니다. 사망이라는 이리가 양들을 위협할 때 자기 목숨을 희생 제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당당히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이제 양들은 죽음이라는 이리떼로부터 해방되어 목자이신 주님을 따르기만 하면 안전하고 그 생명이 풍요롭게 됩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스스로 이루셨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선한 목자로 신뢰하며 믿습니다. 그 주님을 따르는 우리가 양이며 또한 양들을 이끌어 가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본을 따라 산 우리는 마땅히 주님의 부탁하심을 따라 맡겨진 양들을 치고 먹이는 일을 해야 합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앞으로 여러분들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될 것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을 따라 여러분도 성도들을 돌보는 일을 맡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일에 바른 지도자가 되기를 위해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더욱 잘 알기 원하며 겸손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러한 사람이 주님께 쓰임 받는 지도자, 리더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입니다. 이것을 의심할 여지는 없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예수님이 정말 좋은 분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교회가 주님께서 맡겨주신 그 일을 잘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을 많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주님을 본받아 삽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그것은 주님을 따라 선한 목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바르게 살고 하나님과 겸손하게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그 길입니다. 이 길은 주님께서 몸소 행하신 길이며 우리가 가야할 길입니다. 이 길에서 서로 힘이 되어주고 도움이 되어주는 멋진 신앙인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