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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과 구원

심판과 구원

요한복음 3:14~21

14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다음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꿩, 비둘기, 참새, 까치 그리고 서생원 이야기, 장화홍련전, 흥부놀부전, 춘향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장발장, Hunger Game 3-Mocking Jay, Star Wars 1~6 등. 모르는 이야기도 있고 아는 것도 있지요? 정답은 권선징악- 착한 사람은 상을 받아 잘 되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내용이지요. Justice와 관련된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악은 최후에 심판대에 서게 됩니다. 왜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본인이 믿던 안 믿던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슨 일이냐고요? 장래 심판 받을 일에 대하여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종교에는 장래 있을 심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생전에 살았던 모습을 통해 잘잘못을 가리고 합당한 벌과 상이 주어진다는 내용입니다.


성경에도 이와 유사한 심판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개인이 생을 마감하고 주님 앞에 서는 날, 세상의 종말, 여호와의 날, 진노의 날,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날에 있을 심판에 대해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지요.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심판은 각각 행한 대로 보응을 하시는 정의의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벧전1:17,2:23)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잘잘못을 따지게 되는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도록 명시하시고 알게 하셨습니다. 때로 이런 심판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을 꺼릴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심판은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심판에 대하여 하나님 말씀은 오로지 심판만 있고 벌만 있고 저주만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심판을 피할 길이 있다고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그 길이 구원의 길입니다. 그 방법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그 길은 예수께서 단번에 열어 놓으신 십자가의 길입니다. 히브리서 9장 28절에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에 대한 근본정신은 바로 긍휼을 베푸신 사랑이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오늘 바리새인이요 관원인 니고데모라는 사람과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께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고 인정하고 말을 이어갔지만 예수님은 그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의문에 대해 정확히 집어내시고 한 명제를 던지셨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단 말입니까?”

“아니다.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 성령으로 난 사람은 바람과 같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네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

“내가 땅의 일을 말해도 믿지 못하는데 어찌 하늘의 일을 이해하겠느냐? 보아라, 하늘에서 내려온 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백성을 구원했던 것처럼 인자도 들려야 할 것이다. 이것은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다른 문제가 아니다. 믿어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는 것을 믿어라. 그 사랑 때문에 독생자를 세상에 주셨고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신다. 잘 들어라.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다. 오히려 그 아들 때문에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함이다. 때문에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그를 믿지 않는 것은 이미 심판받은 것이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을 통해 우리는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 알 수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을 믿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것은 빛이 우리에게 비추게 될 때 우리가 돌아서지 않고 그 빛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 있는 어두움이 물러가게 되고 빛의 사람이 됩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단순한 진리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선민의식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의식의 한 부분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구원을 받을 유일한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한 그들에게 혈통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혈통적인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시고 영적 혈통 즉 영으로 난 이들이 구원받는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 일은 십자가 사건 이후 성령 강림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구원이라는 것은 일종의 해방일 수도 있고 경제적 정치적 환경적 어려움에서의 놓임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일이기도 합니다. 한 부분에서 그것은 맞는 이야기입니다. 제3세계 국가에서 혹은 과거 식민지에서 해방이 구원이었고 목표였습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준 사람이 구원자이고 그 일이 구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구원은 죄의 종으로 살 수 밖에 없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의의 종으로 삶의 변화를 겪는 것을 말합니다. 영적인 구원이 없이 다른 구원은 의미가 충분하지 못합니다. 때문에 강조되는 것은 영적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육적 영적이라는 이분법적인 말은 구원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어렵게 합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구원은 전인적인 구원을 의미한다는 뜻입니다. 어느 한 측면을 강조한 것이 아닌 전인적인 구원이 우리에게 참 해방이고 자유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에게 반드시 심판이 있게 될 것입니다. 문법적으로 이 문장이 맞지는 않지만 심판이 있게 되리라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 심판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심판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한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미 임하여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 심판은 이미 내려진 사실이요 그 결과는 죽음이라고 명명한 영원한 멸망의 상태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영적인 죽음이요 암흑의 상태입니다. 이미 죽은 상태로 암흑 속에 있는 상태에 있다는 말입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사람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죽음에게 지배당하게 되면서 하나님은 깊은 고민을 하셨습니다. 주님의 지혜는 인간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자신의 공의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음을 아셨습니다. 주님의 사랑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은 사랑의 증표로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야 했습니다. 세상의 빛으로 사랑의 증표로 세상에 보내진 하나님의 아들이 암흑 속에서 사망에 매여 있는 이들에게 빛을 비추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소망(所望)이었습니다. 여기 어두움에 비친 빛에 반응하십시오. 예수님은 스스로 세상을 향한 생명의 빛으로 오셨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 빛은 따르는 사람들에게 빛 가운데서 자유를 누리고 구원을 받게 합니다. 그 말은 예수님이 구원의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는 뜻입니다. 다른 기준은 아쉽지만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로만 가능합니다. 다른 길이 있다고 누가 가르치고 믿게 한다면 그것은 ‘끝이 다른 구원’입니다. 그것이 이단입니다.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사이비입니다. 예수만이 참 구원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십시오. 그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너무 쉽다고 생각하십니까? 가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경험이나 지식 지혜로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것이 진리입니다.


단지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세상의 빛을 따라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믿는 사람에게 구원은 시작이요, 성화의 길에서는 출발점입니다. 거룩하게 살라는 주님의 당부에 부응하고 구원의 놀라운 사역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빛 된 삶을 통해 아직 암흑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는 것이 먼저 예수님을 영접한 이들의 본분입니다. 빛으로 나아온 사람은 우리의 근원인 빛의 아버지께 돌아가고 그 빛을 비추는 이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잘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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