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고 데이 Imago Dei
이마고 데이 Imago Dei
고린도후서 4장 3~6절
3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2 Corinthians 4:3~6
3And even if our gospel is veiled, it is veiled to those who are perishing. 4The god of this age has blinded the minds of unbelievers, so that they cannot see the light of the gospel that displays the glory of Christ, who is the image of God. 5For what we preach is not ourselves, but Jesus Christ as Lord, and ourselves as your servants for Jesus’ sake. 6For God, who said, “Let light shine out of darkness,”made his light shine in our hearts to give us the light of the knowledge of God’s glory displayed in the face of Christ.
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요즈음엔 다양한 방법으로 image 이미지를 취하고 저장할 수 있는 기기가 많습니다.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필름카메라, 카메라 폰, 디지털카메라, 비디오카메라, 웹캠 등등 광학렌즈를 이용한 카메라-류(類)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물론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예부터 사용된 방법이지만 카메라가 생기고 난 후 사람 손은 사진기술의 발달로 말 그대로 ‘손’이 귀하게 되었습니다. 아무튼지 이미지들을 얻고 저장하는 방법은 우리의 삶에 풍성함을 제공해주었습니다. 훌륭한 그림들을 사진한 장에 담아 두고 볼 수 있고 예쁜 짓 하는 손주의 재롱을 담아 둘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뇌 속에 기억되는 수많은 기억들의 대부분은 이미지화되어 있어서 언제든 추억 속으로 돌아갈 때 그 이미지가 떠오르게 됩니다. 그러니 오래된 사진들을 잘 버릴 수 없고, 또 잃어버릴 때 갖게 되는 상실감도 크겠지요. 그런 면에서 이미지는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셈이네요.
물론 이미지는 이런 시각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지는 좀 더 포괄적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감각적인 이미지도 있고, 분위기나 느낌도 포함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갖게 되는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전체적인 분위기나 느낌 혹은 만나고 남은 반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이미지는 대상의 전반적인 모든 것을 드러내는 말이 되고 이런 이미지가 인간 사고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성경에서도 중요한 단어 가운데 하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
본문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을 영어로 image of God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만 저는 라틴어 이마고 데이라는 말을 더 잘 사용하는 편입니다. 뜻은 같습니다.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성경에서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선 여러분들이 가장 먼저 이 말을 사용한 성경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딜까요? 네 맞습니다. 창세기1장 26-27절에 가장 먼저 사용된 말입니다.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여기서의 형상-이미지란 하나님과 인간이 구체적으로 닮은꼴인 것을 의미합니다. 거기엔 외적인 닮음도 포함하고 있고 내적인 성품이나 능력을 포함합니다. 다만 창조 때에 인간이 담은 하나님의 이미지는 말 그대로 닮음 이지 동일은 아닙니다. 피조물과 창조주와의 엄연한 질적 차이를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창조주 하나님을 닮은 유일한 피조물이라는 점입니다. 인간의 가치와 존귀함은 다른 피조물과 다른데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것에 근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그리스도
두 번째로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 이미지라는 말은 오늘 본문에서 사용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태초 인간이 가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바울은 예수그리스도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스스로 종의 형체 즉 피조물로서 육체를 입으시고 우릴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여준 분으로서의 이미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빌2:6).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그 모습을 우리에게 보이시기 위해 자기 위치를 버리시고 우리에게 오셔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모습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위대한 모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미지가 우리에게 나타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뵙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를 전파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이 승천하신 후에 세상에 남아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의 아들 됨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하신 말씀들과 교훈 그리고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제자 중에 빌립은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자신을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증거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자신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그 기도를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믿었고 그대로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그리스도는 보내주신 성령을 통해서 제자들 안에서 역사하셨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유익도 구하지 않고 전파되는 예수님의 주님 되심은 반대자 사울로 하여금 바울 되게 하였습니다. 바울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이 맡겨진 것에 대하여 늘 은혜로 된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주님의 은혜라는 유명한 고백은 바울을 철저하게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게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종 된 바울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바울은 율법의 정죄로부터 벗어나 복음으로서 자유자로 신분이 변경되었음을 전하면서 스스로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함으로 참 자유자로서의 자신의 신분변경의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래 율법이 정한 죄 때문에 사망의 종이 되어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지만 예수의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사랑으로 대속제물이 되어 구원의 길을 주신 은혜로 복음에 빚진 자 곧 영생을 얻는 자유자로 신분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능력이나 재능이 아닌 것이기에 선물로 받은 값진 구원에 대하여 우리는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따라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주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주의 명령에 따라 살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자유자 이지만 스스로 종의 모습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스스로 복음에 매여 그리스도의 종이 된 바울은 또한 역시 복음으로 인해 사람들을 위해서도 종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고후4:5). 다시 말하면 타인을 위해 자신을 ‘거룩하게 낭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재물만 아니라 자신까지 내어주는 거룩한 낭비가 일상화 되어서 비록 고난을 받는다고 해도 하나님의 주신 사명을 기쁘게 여기는 것입니다(고후12:15).
우리도 그리스도의 종
사도 바울이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면 우리도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구원을 인해 스스로 그리스도의 종의 모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역자나 목회자만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그리스도의 종으로 성장하고 쓰임 받아야 합니다. 사실 그렇게 되기까지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여건은 우리에게 좋은 훈련장이 되고 거기서 우리는 견고해지고 자라갑니다. 바울이 살던 시대와는 다르지만 현대에도 다양하게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정죄하며 거부합니다. 복음의 말씀이 편만(遍滿)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예수를 보여주는 사람은 적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먼저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종 된 모습을 갖춰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거룩하게 낭비하고 기쁨 가운데 살아가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이미지, 이마고 데이(imago Dei)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 우리에게 복이 될 것입니다. 이런 삶 되기를 먼저 본을 보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