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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주님

말씀이 육신 되어 오신 주님

요한복음 1장 1~8, 14절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o6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o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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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오심을 기다리는 교회 절기인 대강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이 절기의 끝은 성탄절입니다. 성화교회가 생기고 난 후에 첫 번째 맞이하는 성탄절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더욱 가슴이 벅차오르고 여느 해와는 달리 기대와 소망이 넘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에게 하나님께서 주실 큰 은혜가 기대됩니다.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다림

첫 번 성탄이 있기 전에 수많은 사람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벨론이라는 강성한 대국의 침략으로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성전도 무너지는 쓰라린 경험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스스로를 낮추고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기다렸습니다. 70년간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면서 그들의 신앙이 더욱 견고하게 되었지만 흐르는 역사 속에서 다시 하나님께 범죄하고 떠나 살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들을 통해 나타났지만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도 더 이상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사백 년이 넘는 기다림 속에서 메시아를 염원하게 되었습니다. 압제하는 자들의 손에서 스스로는 구원할 수 없음을 인식한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구원해줄 메시아가 곧 오시리라 믿으며 어둡고 긴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꿈꾸었습니다. 빛을 비춰줄 메시아 생명을 줄 메시아를 기대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역사를 계속하셨습니다.


계속 침묵하셨던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빛을 주시고 생명을 주시려고 때가 이르기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그런 구원의 빛은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원했던 구원은 자신들을 압제하는 자의 손에서 자신들을 구원할 지도자였지만, 하나님은 인류 전체를 구원할 메시아를 계획하시고 계셨습니다. 창세후 아담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타락하였습니다. 그때에 피조세계가 죄로 물들고 하나님과 단절되어 죽음을 경험하게 되었는데, 여전히 그 모든 것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구원계획을 세우시게 됩니다. 그 가운데서 보잘것없는 이스라엘, 지렁이 같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복주시며 그 가운데 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침묵에 오래 기다림같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경륜에 맞춰 적절한 때가 이르기까지 수천 년을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을 통해 메시아의 오심에 대한 말씀을 주셨고 그대로 성취하도록 섭리하셨습니다. 마침내 때가 이르러 약속을 이루게 되었을 때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빛을 소개하는 임무를 맡은 이가 먼저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엘리야의 심정을 가진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탄생의 의미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 뒤에 오시는 분이 세상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을 베푸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고 전하면서 그가 오시면 자신의 역할은 끝이 나고 메시아의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라고 전파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회개하고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사람들의 마음을 갈아 좋은 마음 밭을 만들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세례를 받고 메시아 도래를 기다렸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세례 요한의 말들을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요한 자신은 세상의 빛이 아니라 다만 증거할 뿐이라고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하였습니다. 그의 주장은 이것입니다. 자신은 단지 하나님의 보내심을 입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셔서 생명의 빛을 비취게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자신은 준비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생명의 빛으로 오셨음을 사람들로 믿게 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주님의 일을 한다 하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자신이 쓰임 받는다는 생각을 잊고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으로서 주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종은 주인의 명령에 따라 일을 할뿐 모든 공은 주인의 것입니다. 종이 주인을 위해 한 일에 대하여 주인이 상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해주면 그것으로도 감사해야할 것입니다. 이유는 종은 주인에게 속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종이 주인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한다든지, 자신을 주인보다 더 드러낸다면 불충하고 악한 종이 틀림없습니다. 우리를 자신의 피 값으로 대속하시고, 죄의 종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시고 양자양녀 삼아주신 주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단지 우리에게 부탁하신 말씀을 따라 살면서 참 좋으신 주 예수님을 전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말씀이신 예수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가운데서 14절 말씀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아멘.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입니다. 여기 사용된 헬라어 로고스 곧 말씀이로 번역된 단어는 요한기자에게 두 가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생각된 말 즉 ‘사고’로서의 말씀의 의미를 가집니다. 사람이 사고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사람을 지으시고 만물을 지으신 이의 사고를 우리는 상상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사고는 영적인 것이며 그것은 영원하고 무궁한 지혜입니다. 그것은 말씀이라고 불리며 태초에 천지를 창조한 원동력입니다. 두 번째는 발설된 말로서 ‘언어’를 뜻합니다. 언어는 정신, 마음의 표현으로 감정과 사고 표현의 기본 수단이 됩니다. 말씀으로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때에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의 말을 들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선포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정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숨겨지고 감추인 것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역할을 감당하며 동시에 우리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인간의 성정을 아시는 예수님은 하나님께 우리의 사정을 변호하시게 됩니다. 때문에 세례 요한의 말은 음성으로 예수님의 말은 말씀 곧 진리의 말씀입니다. 아멘.


말씀이 육신 되어 오심

하나님이시고 말씀이신 즉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드러나게 하시는 말씀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왔다는 말은 이해 불가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라는 질문을 아무리 해보아도 그것은 신적인 비밀-신비이지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인간이 알기를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에는 부족하였고 더욱이 죄의 담이 그것을 방해하였습니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이 직접 세상에 임재 하는 것인데 영이신 하나님이 임재 한다면 죄인된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죽을 수밖에 없으므로 하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야 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에는 엄청난 하나님의 희생과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오셔야 한다는 것은 무모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일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일이 아니고서는 우리가 구원의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희생을 감수하신 주님을 영접하기를 바라고 또한 그리스도의 신비 가운데 여러분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아멘.


우리는 우리에게 말씀으로 오신 주님이 다시 오시겠다하심을 믿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고대하였던 것과는 다르지만 그런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립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주님의 때가 이를 것을 기다림입니다. 우리는 단지 세례 요한과 같이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부탁하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요한과 다른 점은 언제 주님 다시 오실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하시는 주님과 교제하게 하시는 성령께서 함께 하시니 우리는 지속적인 힘을 얻습니다. 낙망하지 말고 주님께서 당부하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우리의 에너지를 다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의 대언자로 사역자로 여기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 우리의 선교대명을 고취하는 귀한 절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항상 있기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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