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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과 응답

부르심과 응답

Call and Response

사도행전 13장 1~3절

1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Acts 13:1~3

1In the church at Antioch there were prophets and teachers: Barnabas, Simeon called Niger, Lucius of Cyrene, Manaen (who had been brought up with Herod the tetrarch) and Saul. 2While they were worshiping the Lord and fasting, the Holy Spirit said, "Set apart for me Barnabas and Saul for the work to which I have called them." 3So after they had fasted and prayed, they placed their hands on them and sent them off.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빕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회개에 관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회개 없이는 구원이 없다고 했고 회개에는 과정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인식으로부터 시작해서 죄의 본질을 알고, 잘못한 일이 하나님에게 죄를 짓는 것임을 인식하며, 어떤 변명도 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인식 그리고 그 죄성이 타고 난 것이어서 우리의 힘으로는 고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의 본성이 그러함을 깨닫고 겸허하게 하나님께 죄의 문제를 내어 놓으면 우리 죄를 속하시고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하시는 주님을 만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시작은 항상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어 보이는 것임을 그것이 회개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 과정을 거쳤거나 거쳐야 합니다.


구원의 여정은 회개로 시작하고 성화의 삶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그 가운데서 주님은 우리를 자녀로 제자로 사역자로 부르십니다. 이러한 것을 Calling 소명이라고 하는데 오늘 본문은 소명과 응답에 관한 바울의 경험을 통해 우리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언제 – 소명은 회개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거나 회개의 과정이 지난 후에 불려지게 됩니다. 말 그대로 부름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소관이며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해당하며 그 시기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정확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 때를 알 수 없다는 것이 특징이지만 소명을 받는 사람은 그것을 곧 알아차리게 됩니다.


어디서 – 하나님의 부르심은 어디서든지 가능합니다. 모세는 광야에 있는 산에서 부름을 받았고 기드온은 타작마당에서 부름을 받았으며 사무엘은 한밤중에 잠을 자던 곳에서, 사울은 잃은 암나귀들을 찾으려고 헤매다가 부름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양을 치는 장소에서, 엘리사는 농사짓는 현장에서 소명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는 호숫가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부름을 받았고 바울은 말을 타고 다메섹을 향하던 길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어디든 주님은 자신의 때에 부르십니다. 우리는 귀를 기울여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을 – 하나님의 부르심은 원하시는 일을 위해서입니다. 모세는 억압받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시는 일로 부르셨고, 요나는 적국의 회개를 위해 부름을 받았고 호세아는 배반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으며 제자들은 주님의 맡기신 복음 전파를 위해 부르셨고 그중 바울은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 부르셨습니다. 오늘 우리를 이곳에 부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시는 지 생각해보셨습니까? 여러분과 제 마음에 기쁨으로 가득하게 하는 그 일을 하라고 오늘 부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가 – 우리를 부르시는 주체는 당연히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는 음성에 민감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은 우리가 그 음성을 늘 듣는 훈련으로 민감하게 되고 순종하기를 바라십니다. 그 음성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나타나게 됩니다.


어떻게 – 주님의 부르심은 때로 명확한 음성이나 환상 혹은 꿈이나 계시적인 말씀으로 부르십니다. 하지만 그 방법 또한 만들어 주신 세상에 항상 담겨 있어서 우리는 때때로 주님의 음성을 다양한 방법으로 듣게 됩니다. 예언자나 선생들을 통해 전달되기도 하며, 목회자의 설교 가운데, 우리가 부르는 찬송 가운데서 우리를 부르시기도 합니다. 교회는 특별한 직무를 위해 사역자를 부르게 되는데 그런 방법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으로 인정합니다. 물론 회개는 우리를 부르시는 한 통로이기도 합니다. 회개하는 가운데 주님은 사역자로 불러주시기도 합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그 믿음의 분량대로 하시고 적절한 방법으로 부르십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서원(誓願)하기도 합니다. 서원은 인간 측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약속이자 언약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조차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우리는 인정하고 믿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그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무척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을 좀처럼 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서원하는 사람은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곧 인정하게 됩니다.


왜 – 소명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까닭은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라고 하셨고 찬송 받으시기 위함이라고도 하셨으며 주님의 뜻하신 바를 이루기 위함이라고도 하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하나님의 뜻, 주님의 의지를 이루시기 위한 일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지체할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의 일은 주님께서 이루실테니 우리는 단지 순종하고 의를 이루기 위해 부름 받은 자로서 충성하면 됩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라는 바울의 교훈은 우리로 하여금 소명 받은 사람으로서의 자세를 알려줍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나바와 사울은 이방인을 위한 복음의 사역자로서 선교사로 부름을 받게 됩니다. 반드시 어떤 특별한 일을 위해 우리를 부르시지는 않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는 그곳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기를 바라시는 것이기에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서 지금 여기에 합당한 모습을 하면 됩니다.


아무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이 금식하고 회개한 후에 수년이 흐르며 유대인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것을 열정적으로 전하던 사울은 바나바의 천거를 통해 교회에 복음을 가르치고 전하는 자로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사역자들을 통해 그들은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로서 주님의 부르심을 입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임무가 그들에게 주어지는 과정에서 그들은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에게 평소에도 금식은 중요한 신앙훈련 수단이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유지하기 위한 은혜 받는 수단으로서 금식은 최고의 훈련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금식은 자신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음식을 끊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로서, 날마다 공급해주시는 은혜를 기억하는 의미에서, 오로지 주님께만 집중하려는 의미에서 결정하고 시행하게 됩니다.


저들이 금식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그 음성으로 말미암아 따로 바나바와 사울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밝혀지게 되었고 바나바와 사울은 그 일을 위해 다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안수까지 받게 되고 파송됩니다.


소명은 공동체를 통해 확증되곤 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주님의 음성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소명은 공동체를 통해 검증되고 확증됩니다. 소명을 받은 사람의 모습은 이전과 다른 삶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흥분상태(excitement)나 열정(enthusiastic fever)만을 나타내는 것은 소명이 아닐 수 있습니다, 소명은 분명히 그런 것을 동반하지만 그것이 증거일 수는 없습니다. 소명은 기쁨(joy)을 동반합니다. 감사가 넘치고 기쁨이 넘치는 일이 계속됩니다. 소명을 통해 기쁨이 생기는 이유는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쁨의 근원은 오직 주님 한 분입니다. 아멘. 이러한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분명 자신이기도 하지만 공동체는 그것을 분별하는 일을 맡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맞는지 확인하게 되고 확증하게 됩니다. 그러면 소명 받은 사람은 공동체에서 지원을 받게 되고 파송을 통해 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소명 받은 사람을 지원해야 할 의무가 공동체에게 있습니다.

때문에 공동체는 소명을 받은 사람을 지원하고 후원할 의무가 있습니다. 특별하게 자비량 혹은 텐트메이커로서 사역을 하게 되는 소명자라면 주님이 그 모든 생활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만 그렇지 않은 이라면 공동체의 지원이 절대 필요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그런 소명 받은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돕는 일은 우리의 의무인 것입니다. 돕는 손길로 부름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마땅히 자기 일을 해야 합니다. 바울은 각양 은사를 맡은 사람이 있고 그 은사에 따라 자기 일을 열심히 하라고 교훈합니다.


소명은 분명 은혜입니다. 소명은 영적 성장의 한 축입니다. 소명 받은 사람은 양날의 검을 가진 것과 같습니다. 소명은 우리를 해할 수도 있습니다만 또한 소명은 우리를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가도록 돕습니다. 우리를 해할 수도 있다는 말의 의미는 소명 받은 사람의 불순종은 안타까운 일이 생기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중도에 포기한 이들에게는 데마같이 악명을 혹은 돌아서는데 또한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소명을 받은 사람이 그 길을 잘 따르게 되면 칭찬받는 종으로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게 됩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일은 가장 큰 영광일 것입니다. 잘 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내 잔치에 참여하여 영원한 기쁨에 거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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