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사람에게 하되 하나님께 하듯이
마태복음 6장 1~18절
로마제국의 압제 하에 살던 이천 년 전 이스라엘에서 예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가르치시는 것은 목숨을 내놓고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열정적으로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무장시키려고 가르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한 열정 가운데 하나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본문은 세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4절은 구제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5~14절은 기도에 대하여, 15~18절은 금식에 대하여 귀한 가르침을 베푸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부분은 공통적으로 중요한 몇 마디 말씀이 각각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것일까요? (함께 한국어 공부를 해봅시다. ELA, English Language Arts가 아니고 KLA, Korean Language Arts입니다. 여러 문장이나 문단에서 반복적으로 들어가 의미를 강조하는 글쓰기 방법을 반복법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문장에서 반복되는 것은 콩과 팥이죠. 그렇게 반복해서 나타나는 문장 어절 단어를 반복법에 의해 사용되면 강조하는 용법이 됩니다.)
첫 번째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라는 말이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하지 말라’ 라는 말이 공통적으로 들어갔습니다.
세 번째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네 번째는 ‘아버지께서 ~하시리라’는 말입니다(갚으시리라, 용서하신다).
다섯 번째는 ‘~ 하라’는 대안적인 말씀을 해 주십니다.
물론 약간의 용법상의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이와 같은 반복이 계속 나타나는데 이것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께 경의를 표현하고 율법의 기초로서 구제, 기도, 금식은 당시 사람들에게 중요한 신앙생활의 모습이었습니다. 기도에 의해 우리의 ‘영혼’으로, 금식에 의해 우리의 몸으로, 구제에 의해 우리의 ‘재산’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삶이 됩니다. 이와 같이 함으로써 ‘악에서 떠나야할’뿐만 아니라 ‘선을 행하고’ 또한 주님께 ‘영구히 머무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러한 일을 함에 있어서 주의하여야 한다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고 주의 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왜냐면 그렇게 하면 그에 대한 영원한 상, 하나님의 갚으심을 놓치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것으로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 싫다면, 주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당위의 문제에 있어서 마땅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주님께서 ‘진실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십시오.
아버지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통해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하십니다. 우선은 정말로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으로 살기를 바라신다는 점입니다. 남을 돕는 일을 하는 사람은 그 마음에 뭔가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쁨도, 즐거움도 가득 차오르게 됩니다. 밥을 먹지 않아도 힘이 들어도 배가 부르고 더 힘이 납니다. 선한 일로 얻는 것은 이런 감정적인 것보다 더 큰 것이 있습니다. 남을 위한 중보도, 잘못을 용서해주는 것도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한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집니다. 생명을 걸고 하는 금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그 복으로 살기를 바라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지는 복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죽으면 끝나버릴 것 썩어질 것이 아닌 영원히 지속되고 영생하도록 계속되는 하나님의 복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무엇으로 그것을 바꾸려고 할까요? 하나님의 진심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살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진실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을 받으십니다. 동기와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모든 일의 결과는 주님께 달려있는 것입니다. 아멘. 다만 그 일을 통해 주님이 드러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삶은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결정되고 확정된 일을 주님께 맡겨드리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우리는 절대적인 순종을 통해 그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시작한 일을 통해 순종을 이루게 하시고 만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은밀한 중에 함께 하시는 주님-침묵하시는 주님.
우리가 선을 행하며 구제할 때에도, 깊은 마음의 평안을 위해 기도를 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위해 금식을 하거나 남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올릴 때에 우리들의 눈에는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고, 부족하고 없어 보여도 조용히 침묵 가운데 들으시고 보시는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God’s Stillness
하나님의 침묵은 큰 의미가 담겨있으며 하나님의 응답이기도 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이 없이는 영적으로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것들을 당장에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지만 당장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에 대하여 더욱 놀라운 깨달음을 얻도록 하시는 신호등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지속되면 우리는 하나님께 기쁘게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위대한 주님의 일을 이루시는 그 때를 곧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우리는 그분의 신실함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떡을 달라고 구한 아들에게 돌을 주지 않을 악한 아버지가 아닌 보다 더 선하시고 능력 있으신 분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침묵에 놀라지 마십시오. 우리도 그분의 성품을 닮아 때로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을 시간 가운데서 놀랍게 역사하실 줄을 믿고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셨다면 더욱 가까워진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서 나타날 최초의 신호는 하나님의 침묵일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과 더욱 가까이 있음을 알게 할 것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저 바라보고 생각만 해도 아는 관계가 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읽은 말씀 가운데서 여러분과 은혜로 얻은 말씀을 이 시간 나누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도에 관하여 하나님의 침묵이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제 아침에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계시는지 마음속에서 질문이 되고 의심에 찬 물음에 여전히 아무 응답이 없으신 주님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는 가운데 한 가지 깨우침이 있었는데 그것은 나의 모습을 점검하게 된 것입니다.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예배처소를 구하고 있었는가?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랬는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자체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와서 예배하는 장소인가? 주님 앞에 죄송하고 잘못생각하고 있었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우선하며 살아야 합니까? 가장 단순하고 의미 있는 답은 하나님입니다. 예배당(chapel)이나 예배 의식(worship service)조차 하나님보다 우선할 수 없습니다. 예배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예배가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장 중요합니다. 나는 그것을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과 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우리가 가져야할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 생각하고자 함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고 우리도 그렇다면 하나님이 가장 귀한 분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분입니다.